[황인숙 행복한 시읽기]<303>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이홍섭(1965∼)

일평생 농사만 지으시다 돌아가신
작은할아버지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절을 잘하셨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나는 무엇보다 작은할아버지께서 절하시는 모습이
기다려지곤 했는데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
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세상사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가만히 그 모습을 떠올리며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보지만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모자라도 한참은 모자란 자세라
제풀에 꺾여 부끄러워하기도 하지만

먼 훗날 내 자식이 또한 영글어
제삿날 내 절하는 모습을 뒤에서 훔쳐볼 때
그 모습 그대로 그리워지길

그리워져서
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모습이라
생각해주길 내처 기대하며
나는 또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가만히 발끝을 모아보는 것이다


그 옛날에는 손윗사람을 만나면 절을 하는 게 상례였지만 요새는 거의 죽은 사람한테만 한다. 개신교 신자들은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까 그나마도 절을 할 일이 없을 테다. 나는 개신교 신자도 아니건만 십대 이후로 절을 한 적이 없다. 동창생 몇과 은사님을 뵈러 갔던 어느 설날이 생각난다. 어느샌가 일행이 은사께 줄줄이 세배를 드리는 게 아닌가. 이윽고 한구석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나를 힐끗 보시는 은사님께 쥐어짜듯 말씀드렸다. “저는 세배 안 해요.” 그에 심드렁히 “그러든지” 하실 줄 알았건만 은사님은 엄한 눈빛으로 “왜?” 하고 물으셨다. “그냥요…”라고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절하는 동작을 보이는 데 대한 무대 공포증이 빚어낸 행태였는데, 은사님은 본데없이 자란 게 분명할 이 제자가 걱정스러우셨을 테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절하는 법도 제대로 모른다. 절은 공경의 마음이 우선이지만 격식에 따른 자세도 중요하리라. 모든 동작처럼 절도 기본자세가 됐을 때 아름다우리라. ‘두 손을 가지런히 하고, 발끝을 모아’, ‘그 작은 몸을 다소곳하게 오그리고/온몸에 빈틈없이 정성을 다하는 자세란/천하의 귀신들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뿐 아니라 산 사람들한테도 감동을 줄 테다. 운동 삼아서라도 절하는 연습을 해볼까. 나도 절을 아름답게 할 줄 알았다면 은사님께 날아갈 듯 세배를 드렸으련만. 화자와는 정반대로 오늘날 ‘본때 있는’ 집안에서 ‘본데없이’ 자란 이들에게도 절하는 법을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황인숙 시인
#절#이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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