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무서운 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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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라 레고, 가족, 1988년
파울라 레고, 가족, 1988년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파울라 레고는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야기 잘하는 사람)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스토리텔링 기법을 미술과 융합해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녀가 스토리텔링의 힘을 어떻게 그림에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림의 배경은 중산층 가정, 4인 가족이 모여 있는 방 안 분위기가 살벌하다. 아내와 큰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가장을 붙잡아 강제로 침대에 앉혀 놓았다. 아내는 미소를 짓지만 그녀의 거짓웃음에 속지 말자. 남편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손목을 꽉 잡고 양복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옷을 벗기고 있으니 말이다. 큰딸은 한 술 더 뜬다. 좀비처럼 사악한 눈빛으로 아빠를 째려보며 바지를 벗기고 있다. 창가에 서 있는 둘째 딸이 양순한 가장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두 모녀의 행동에 놀라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레고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묻고 있다. “‘단란한 가족’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라는 환상을 깨는 이 막장드라마가 과연 그림 속만의 이야기일까”라고.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도 가족들에게서 왕따 당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필요에 따라 이념도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 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레고가 들려주는 잔혹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문득 가슴이 섬뜩해진다. 그림 속 무서운 여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파울라 레고#스토리텔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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