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인 화가 파울라 레고는 뛰어난 스토리텔러(이야기 잘하는 사람)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가진 스토리텔링 기법을 미술과 융합해 그림 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공감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그녀가 스토리텔링의 힘을 어떻게 그림에 활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그림의 배경은 중산층 가정, 4인 가족이 모여 있는 방 안 분위기가 살벌하다. 아내와 큰딸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온 가장을 붙잡아 강제로 침대에 앉혀 놓았다. 아내는 미소를 짓지만 그녀의 거짓웃음에 속지 말자. 남편이 반항하지 못하도록 손목을 꽉 잡고 양복 소매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옷을 벗기고 있으니 말이다. 큰딸은 한 술 더 뜬다. 좀비처럼 사악한 눈빛으로 아빠를 째려보며 바지를 벗기고 있다. 창가에 서 있는 둘째 딸이 양순한 가장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두 모녀의 행동에 놀라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레고는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묻고 있다. “‘단란한 가족’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라는 환상을 깨는 이 막장드라마가 과연 그림 속만의 이야기일까”라고.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도 가족들에게서 왕따 당하는 아버지들이 등장한다.
‘아버지들 얘기야. 처자식이 딸리면 치사한 것도 견디고 필요에 따라 이념도 바꿔야지. 오늘의 아버지들, 예전에 비해 그 권세는 다 날아갔는데 그 의무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거든. 어느 날 애비가 부당한 걸 견디지 못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와 낚시질이나 하고 있어 봐. 이해하고 사랑할 자식들이 얼마나 있겠어?’
레고가 들려주는 잔혹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문득 가슴이 섬뜩해진다. 그림 속 무서운 여자들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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