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문병기]최저임금의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문병기 경제부 기자
문병기 경제부 기자
최근 각국에서는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일 노동절 기념연설에서 연방 최저임금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방 최저임금을 시간당 7.25달러에서 10.10달러로 인상하는 법안을 추진해왔지만 공화당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기로 하면서 재계와 갈등을 빚고 있다. 독일은 그동안 국가 단위의 최저임금제 없이 노사 자율협상을 통해 직종별로 임금을 결정해왔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이 커지고 있는 배경에는 경기침체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되고 있는 소득불균형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에 불어닥친 ‘부유세’ 논란이 근로자의 삶에 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임금 문제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수준이 경제적 빈곤 상태에 있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으로 높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저소득층일수록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가 증가하는 효과가 큰 만큼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내수 경기가 살아나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국내에서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취임 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최 부총리가 인사 청문회와 방송 출연을 통해 “최저임금 문제에 대해 과거보다 전향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새 경제팀이 내놓은 ‘가계소득 증대 3대 패키지’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에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도 최저임금 인상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은 국내 경제상황에 비춰볼 때 최근 불거진 최저임금 논쟁에는 몇 가지 ‘논리적 함정’이 있다고 지적한다. 먼저 최저임금을 받는 이들의 상당수가 저소득층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저임금 일자리의 상당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일하는 ‘아르바이트’ 일자리다. 얼마 전 해군장교에 지원, 합격해 화제가 된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둘째딸이 아르바이트를 통해 스스로 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는 일화처럼 심지어 재벌그룹의 자녀도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할 수 있다. 실제로 정부는 최저임금 근로자들의 3분의 2가량은 저소득층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최저임금 규정이 있어도 이를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청년 40%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경험이 있고 30%는 최저임금이 얼마인 줄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불투명하게 결정되고 있는 최저임금 결정구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처럼 최저임금을 중위소득의 50% 수준을 기본으로 물가와 성장률 등을 반영한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투명한 임금체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문병기 경제부 기자 weappon@donga.com
#최저임금#경기침체#소득불균형#아르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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