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영해]주사파 성희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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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주미 한국대사관의 대학생 인턴을 성추행한 것은 술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대통령의 첫 미국 순방 때 맑은 정신을 유지했어야 할 그가 인턴과 술을 마시고 ‘성 추문’에 휘말려 국가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 술에 취해 실수를 한 건지, 성희롱과 술을 동시에 즐긴 건지 그 자신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은 음주 문화에 관대한 편이었다. 사고를 쳐도 “술 먹고 정신을 잃어서”라고 둘러대면 통하는 시대가 있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2009년 분석자료에 따르면 강간상해 및 치상죄의 경우 ‘음주하지 않은 경우’에는 평균 형량이 31개월이지만 ‘만취한 경우’엔 26개월이었다.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형법상 ‘심신 미약’을 이유로 형량을 줄여준 것이다. 가해자가 ‘음주 사고’라고 우기는 것도 법원의 ‘정상 참작’ 판결과 무관치 않아 보이지만 있따른 성범죄로 최근엔 양형이 강화됐다.

▷미국은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한다. 상대방 의사에 반(反)해 가해지는 성폭력에 대해선 관용이 없다. 오리건 주 등 8개 주에선 성범죄자의 화학적 거세도 허용한다. 술을 마신 것도 정상 참작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 한 미국 철도화물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항의한 여직원을 다른 부서로 전출했다가 4만3000달러를 물어주라는 연방대법원 판결을 받았다. 미국 뉴저지 주 대법원은 1992년 피해자가 허락하지 않는 성적 접촉은 물리적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성폭력이라고 판결했다. 중국에선 성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사례도 있다. 혼전 동거가 흔한 유럽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무관용 원칙은 예외가 아니다.

▷술 마시다가 성추행에 걸려 패가망신(敗家亡身)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 새내기 판사, 평택2함대 해군 함장, 노래방과 술집에서 여제자를 추행한 대학교수 등…. 잊을 만하면 성추행 뉴스가 터져 나온다. “술김에 그만…”이라며 아무리 술 탓을 해도 이젠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다. 술자리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갑(甲)은 취했을지 모르지만 피해자는 지울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선명하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음주 문화#성추행#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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