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회와 성우회는 지난주 ‘군은 질책의 대상이 될지언정 모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제목의 의견광고를 동아일보를 비롯한 주요 일간지에 게재했다. 재향군인회는 병역을 마치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단체이고, 성우회는 예비역 장성들의 모임이다. 육해공군 사관학교 총동창회를 비롯해 수십 개의 군 관련 단체들도 참여해 힘을 보탰다. 의견광고는 사실상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모든 국민을 대표한 글이다.
성우회 등은 “최근 일련의 병영 사건에 대해 군의 선배로서 참담한 심정으로 책임감을 통감한다”고 전제하면서 “건전한 질책은 군을 거듭나게 하는 보약이 될 것이나 마구잡이식 군 때리기는 군을 넘어지게 하는 독약”이라고 주장했다. 병영 사건이 군만의 책임인지를 자문하며 가정 학교 사회의 폭력이 병영으로 밀려들어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
안보분야를 담당하는 논설위원으로서 군을 너무 흔들어선 안 된다는 견해에 공감한다. 22사단 총기난사와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사건이 충격적이지만 군 전체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것은 지혜로운 대응이 아니다. 군은 그렇지 않아도 초상집이다. 밖에서 너도나도 질책을 퍼부으면서 온갖 대책을 주문하는 바람에 군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는 군이 보도와 비판의 성역으로 군림했으나 지금은 세세한 사고까지 다 노출돼 걱정스러운 측면도 있다.
그러나 신현돈 전 1군사령관의 음주 추태 앞에선 할말을 잃는다. 별 넷을 단 대장이 흐트러진 모습을 목도한 민간인들이 군을 어떻게 보겠는가. 재향군인회 등은 “지휘관의 권위와 사기는 군의 생명이자 부대의 전투력”이라며 “지휘관들을 호통 치며 면박 주는 행위는 60만 국군과 1000만 예비역을 좌절케 하고 적을 이롭게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 전 사령관 사고로 군 선배들의 호소는 후배를 위한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게 됐다. 말단 병사에서 대장까지 사고를 치는 것을 보면서 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신 전 사령관을 잘 아는 예비역 장성은 “우려하던 불상사가 터졌다”고 말했다. 그는 뛰어난 군인이기는 하지만 술을 마시면 절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별을 단 뒤에도 상관으로부터 “조심하라”는 지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긴급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 수뇌부는 모든 역량과 노력을 투입해 하루빨리 새로운 병영문화를 만들어 부모들이 안심하고 자제를 군에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국방부와 신 전 사령관은 이 말을 듣고도 잘못을 덮기에 급급했다.
지휘관들이 고행(苦行)하는 자세로 부대 통솔과 부하 관리에 전념하면 인명사고가 빈발하겠는가. 인격과 행동으로 부하들에게 모범이 되는 참 군인들이 많으면 병영문화가 달라질 것이다. 병사들이 동료를 해치는 극단적인 사고도 개인적 요인과 함께 구조적 요인을 살펴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장교들이 건강하면 우리 군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 원로들은 어깨에 단 별을 엄중한 책임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대신 과시하는 권력의 표지로 생각하는 장군들이 많다고 걱정한다. 진급을 위해 정치권에 매달리거나 네트워크를 만든다며 사회를 기웃거리는 고위 장교들의 행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군의 병폐다.
대한민국 군은 국민에게 질책과 모욕을 구분해 달라고 호소할 처지가 아니다. 병사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병영문화 개선으로는 군을 바로세울 수 없다. 장군과 장교들이 먼저 바뀌어야 병영 사고 없는 강군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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