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씨는 두 번이나 국회의장을 지냈다. 14대 국회 때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 소속이었고, 16대 국회 때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인 새천년민주당 소속이었다. 당적을 떠나 그는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지는 법안 처리를 무척 싫어했다. 그는 16대 국회 전반기 개원식 때 “의사봉을 칠 때 한 번은 여당을 보고, 한 번은 야당을 보고, 마지막 한 번은 국민을 바라보고 양심의 의사봉을 치겠다”고 다짐했다.
▷16대 국회 때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은 야당(한나라당)의 반대에도 국회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당시 이 의장은 “날치기는 안 된다”면서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끝내 거부했다. 그랬던 이 의장도 국회가 정쟁으로 공전하자 여당만의 단독 본회의를 열어 여야 간에 별 이견이 없던 약사법 개정안 등 몇몇 안건을 처리하는 변신을 보여줬다. 그는 “부득이 국민과 나라를 위해 시급한 민생법안을 다룰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19대 국회 후반기의 정의화 국회의장은 5월 취임 이후 아직 단 한 건의 법안도 자기 손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세월호 정국에 가로막혀서다. 보다 못한 그는 세월호 특별법안의 중재를 자처했으나 여당에 의해 거부됐고, 이후 성명서까지 발표해 “추석 직후 신속하게 본회의를 열어 이미 부의 중인 91개 법안과 안건을 처리하자”고 촉구했으나 이번엔 야당이 사실상 거부했다. 취임 연설에서 “국회의장에 대한 존중으로 국회의 권위를 세워 달라”고 했던 그의 당부가 무색해졌다.
▷이 전 의장 때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엄청난 권한 행사였다. 하지만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을 사실상 박탈당하면서 정 의장은 허수아비 같은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스스로 권위를 세우는 노력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 이 전 의장의 예가 좋은 참고서다. 주어진 권한 내에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의사봉을 들어야 할 때는 과감하게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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