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국민들은 온통 꽉 막혀 있는 정국에 답답함을 드러낸다. 경제 상황은 여전히 나쁘고 집집마다 살림살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럴 때 정치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민생을 살피는 데 앞장서야 하지만 세월호 정국에 갇혀 4개월 이상을 허송세월하고 있다. 무능한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좌절감과 무력감을 호소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인 8일 페이스북에 “나라 경제와 국민 여러분의 행복을 위해 모두 함께 소원을 빌어 그 꿈이 이뤄졌으면 한다”는 글을 올렸다. 추석을 맞아 대통령이 국민에게 보내는 덕담이겠지만, 대통령이 소원을 비는 것 이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하소연처럼 들린다.
박 대통령은 향후 국정 운영의 목표를 ‘경제 활성화’라고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여야가 추석 연휴 뒤에도 세월호 특별법 정국의 교착 상태를 풀지 못하면 경제 활성화 정책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야당이 아무리 세월호를 구실로 국회 운영을 마비시키고 있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여당은 야당 핑계를 대며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다수 국민들은 국회가 경제와 민생 법안들을 세월호 특별법과 분리해 처리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여당은 이런 기대를 못 풀어주고, 야당은 마치 세월호 특별법이 모든 것인 양 어깃장을 놓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박 대통령의 역할이 막중하다. 어떤 인사는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해서라도 국회 정상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국회가 막혀 있다면 박 대통령이 행정력을 최대한 동원해 규제 완화 등 현안을 풀기 위한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치 국면을 전환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기 위한 대통령의 상상력이 절실하다.
‘역사의 종말’을 선언했던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포린 어페어스’ 최근호에서 미국의 정치상황에 대해 “이념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양당제가 견제와 균형을 벗어나 서로의 발목을 잡는 ‘거부권 정치(vetocracy)’에 젖어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치에도 적용되는 말 같다. 국회에서 법안 처리의 요건을 다수결이 아닌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바꾼 국회선진화법은 여야 간의 양보와 타협이 그 전제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다수당이라도 아무 힘도 쓸 수 없게 족쇄를 채운 ‘못된’ 제도일 뿐이다. 이런 식이라면 19대 국회는 물론이고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도 기대할 게 없을 듯해 암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