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 국정원 인사 개입해 정치중립 다시 흔드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2일 03시 00분


국가정보원이 1급 간부 인사에서 A 씨를 요직인 총무국장에 발탁하자 청와대가 뒤늦게 제동을 건 것으로 확인됐다. 임명 열흘 만에 대기 발령을 받은 A 씨는 올해말 명예퇴직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추석 전에 이뤄질 예정이던 국정원 2, 3급 인사가 모두 중단됐다고 한다. 국정원 안팎에서는 청와대 실세의 개입설이 나오고 있다.

이병기 신임 국정원장은 “반드시 정치중립 서약을 지키겠다”며 “머릿속에서 ‘정치관여’ 네 글자를 지워버려라”라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 원장이 개혁 차원에서 단행한 인사가 뒤집힌 것을 보면 정치중립 약속이 지켜질지 의심스럽다. 과거 정권 때도 국정원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의 뜻을 반영했다. 그러나 한번 이뤄진 인사가 번복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청와대가 제동을 걸 수밖에 없었던 무슨 곡절이라도 있었던 건가. A 씨의 대기 발령을 둘러싸고 여러 갈래의 말이 나올 만큼 국정원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정보기관의 정치화가 초래하는 부작용은 크다. 국제분쟁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은 한국 국정원이 정보의 정치화, 국내정치 개입 등 3대 병폐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청와대의 국정원 총무국장 인사 뒤집기와 함께 국내 담당인 2차장 아래의 요직에 대통령직인수위에 파견됐던 사람이 임명됐다. 이런 식의 인사는 국정원의 ‘정치권 줄 대기’와 같은 구태를 근절하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언제 닥칠지 모를 ‘북한 리스크’ 등에 대비하기 위해 품질 높은 정보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국정원의 개혁과 정치중립은 꼭 필요하다. 청와대가 국정원 인사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 잘못된 메시지를 국정원 직원들에게 줄 수 있다. 청와대부터 정보기관을 ‘권력의 도구’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버려야 한다.
#국가정보원#인사#이병기#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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