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중앙지법은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지시로 이뤄진 국정원 심리전단의 인터넷 댓글과 트윗 활동이 국정원법의 정치개입 금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그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법원은 선거 개입이라면 트윗 수가 대선 직전에 증가해야 하는데 오히려 감소했고, 국정원장이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지시한 증거가 없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최고 정보기관 수장에 대한 검찰의 선거법 위반 기소는 대선 패배 세력에 선거 불복 움직임을 촉발시켜 정국의 혼란을 불러왔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차원에서는 대선 불복과 거리를 뒀지만 문재인 의원 등 당내 친노 진영에선 “대선이 대단히 불공정하게 치러졌고 그 혜택을 박근혜 대통령이 받았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제기됐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은 대선 불복을 노골적으로 외치며 박 대통령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하는 문제는 검찰에서부터 논란이 많았다. 윤석열 전 특별수사팀장은 적용을 주장한 반면, 수사지휘 라인에 있던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반대했다. 이 과정에서 외압·항명 논란이 일면서 윤 전 수사팀장은 징계를 받고 조 전 지검장은 사퇴했다. 검찰과 법무부 수장 사이에 대리전도 벌어졌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은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여 기소했다가 석 달 후 혼외 아들 문제가 불거져 나와 사퇴했다. 검찰 수사팀은 기소 후 공소장을 세 차례나 변경하면서 120만여 건의 트윗을 새 증거로 제출했으나 법원이 받아들인 것은 11만여 건에 불과했으며 그것도 선거법 위반 증거로는 인정되지 못했다. 검찰이 무리한 기소로 나라를 뒤흔들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올 2월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 은폐한 혐의를 받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원은 일선에서 수사를 맡은 권은희 전 서울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외압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 사건의 무죄 판결은 무리한 수사나 기소가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그러나 원 전 원장은 법원이 국정원의 정치 개입 혐의를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통렬한 반성을 해야 한다. 그가 대북심리전과 국정 홍보도 구분하지 못하는 지시를 내린 결과 심리전단은 정치 개입을 했다는 오명을 입었다. 결국 국정원은 심리전단 자체를 해체하지 않을 수 없게 돼 꼭 필요한 대북 심리전 활동마저 위축받고 있다. 정보기관의 정치 개입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국정원의 수장이 이런 일로 법정에 서는 일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