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탈세 바로잡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 바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5일 03시 00분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신연수]원희룡 제주지사

원희룡 지사는 취임 후 두 달 사이에 제주도를 위한 사업가로 변신한 듯했다. 현재 정치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모르쇠’로 답했지만, 지난 14년간의 정치생활과 그가 추진했던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변론했다. 제주도제공
원희룡 지사는 취임 후 두 달 사이에 제주도를 위한 사업가로 변신한 듯했다. 현재 정치상황에 대한 질문에는 대부분 ‘모르쇠’로 답했지만, 지난 14년간의 정치생활과 그가 추진했던 정치개혁에 대해서는 ‘온몸으로’ 변론했다. 제주도제공

신연수 논설의원
신연수 논설의원
제주도가 ‘개발 논쟁’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카지노 싫다, 고층 빌딩 싫다, 해외 자본도 싫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싫다….

정부는 관광과 의료산업 규제를 완화해서 해외 투자를 유치하고 경제 활성화를 하기에 다걸기(올인)하는데 제주도는 반대다. 제주도는 2006년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관광과 의료 규제 완화를 가장 먼저 실시한 곳이다. 중국의 해외 투자가 늘면서 제주도에 투자와 개발 붐이 일고 있다. 제주의 지역경제 규모(GRDP 기준)는 2008년 9조 원에서 지난해 13조 원으로 크게 늘었다. 경제성장률이 전국 1위다.

그런데 도민의 정서는 ‘무조건한 해외 자본 유치와 개발은 싫다’로 바뀌었다. 복에 겨운 걸까? 최근 제주MBC 여론조사에 따르면 신규 카지노 76%가 반대, 영리병원 설립 60%가 반대, 고층 건물도 82%가 반대다. 여당인 새누리당 출신의 원희룡 제주지사는 7월 초 취임하자마자 이미 진행되고 있던 투자와 개발을 중단시켰다.

전국 카지노 관리감독 모두 엉망

―정부가 관광산업 활성화의 첫째 과제로 꼽은 게 복합리조트의 신속한 인허가다. 카지노는 복합리조트의 핵심이다. 원 지사는 당분간 신규 카지노를 허가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장소만 빌려주고 세금은 못 걷는 이런 상황이 계속돼선 곤란하다. 카지노 감독기구, 카지노에 대한 수익 환원, 이런 부분부터 정확히 하자는 거다.”

―전국의 카지노가 다 그렇게 관리감독이 엉망인가.

“다 그렇다. 전국 17개 카지노 가운데 8개가 제주도에 있는데 전부 그렇다. A라는 사람이 1000만 원을 베팅하면 그중 700만∼800만 원을 고객모집 브로커들이 가져간다. 나머지 200만 원이 카지노 매출인데 그중에서도 20%인 40만 원만 신고한다. 매출 누락과 탈세, 이런 것들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제주 외에 다른 지역도 매출 누락, 탈세 같은 게 있나.


“있을 것이다. 폐쇄회로(CC)TV로 녹화는 하지만 회계 감독을 하지 않고 감독할 인력도 없고 그날그날 전표 제출하고 없애버리면 지나간 장부는 조사도 안 한다. 세무조사도 한 적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사행성산업관리위원회에서 카지노 경마 복권을 모두 관리하다 보니 카지노를 실제로 밀착해 들여다보는 곳이 없다. 싱가포르 미국 영국 등 다른 나라는 모두 카지노 감독청이나 감독위원회가 있다.”

―관광진흥법에도 문제가 있나.

“예를 들어 싱가포르는 지분관계가 투명하게 돼 있고 주주 자격요건도 있는데 우리는 전혀 그런 규정이 없다. 주주 자격요건도 없고 양도양수하게 되면 양수인 자격요건도 없고 한 번 라이선스를 받으면 갱신 기간도 없다. 카지노에 대한 자세한 규율을 다룬 법 자체가 없다.”

―원 지사가 취임하자마자 파악한 이런 문제를 정부는 1971년 첫 카지노 개장 이래 수십 년간 방치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그러면서 인허가를 더 빨리 내주겠다는 것 아닌가.

“외화벌이인 데다 외국인만 드나드는 특별구역이어서 그런 것 같다. 인천 영종도에도 카지노 설립이 추진되고 있으니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나는 취임 후 객관적인 전문가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서비스산업 관리 방치 땐 제2 세월호

―정부가 다른 서비스산업 투자 활성화도 추진하는데 세월호처럼, 카지노처럼 관리감독은 안 하고 인허가만 내줄까 걱정이다. 외국인투자 영리병원 1호로 추진되던 산얼병원은 중국의 모기업이 파산하고 대주주는 구속됐다고 한다. 철수하려고 땅까지 내놨다는데 정부는 신속히 승인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회의에서 어떻게 확인도 안 하고 이런 안건을 내놓나.

“사실 기획재정부는 서비스산업 활성화 프로젝트들을 10여 년 전부터 갖고 있었다. 지금 세월호 국면을 투자활성화로 바꾸려고 하다 보니 캐비닛에 들어있는 것 다 꺼내서 먼지 털고 다시 발동 걸자고 한 거다. 산얼병원 안건은 올라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 심의 중이냐, 빨리 결정하자, 그러면서 이슈가 됐다.”

―제주 드림타워는 허가까지 났는데 왜 중단시켰나.


“전임 지사가 선거기간에 허가를 내줘버렸다. 제주시 노형동이라는, 앞으로 제주도의 개발 방향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시의 가장 중심에 있고 가장 상징적인 곳이다. 그 옆 건물들이 15층인데 56층 빌딩이 혼자 올라간다? 한라산 경관도 가리지, 처음에 없던 카지노도 넣겠다지, 이건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엔 도지사 직권으로 허가를 취소할 수도 있다. 다행히 중국 뤼디(綠地)그룹이 협조적이어서 56층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합리적 타협점을 찾으려고 한다.”

―제주해군기지는 진상조사를 하기로 했다. 이미 절반 이상 건설된 국책사업인데 만약 중대한 하자가 발견돼 공사를 중단하자고 하면 어쩌나.


“이미 공사중지 가처분 소송을 해 법원에서 이것은 공사를 취소할 정도의 하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여러 번 났다.”

―법원 판결까지 난 것을 다시 진상조사한다는 것인가.

“강정마을은 지금 통치권 거부 상태다. 도에서 지명한 통장, 도에서 주는 예산 다 거부한다. 기지 공사는 내년 말 완성되겠지만 기능을 하려면 마을과의 갈등이 해소돼야 한다. 갈등을 다 녹여서 미래로 갈 수 있도록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제주는 중국인 투자 모델의 시험장

―중국의 투기 자본이 심각한가.

“예를 들어 중국인이 5억 원 이상의 콘도를 사면 투자 영주권을 받는다. 그 뒤 제주도에 콘도 영구 소유권을 가지면서 자신들이 와서 관광하는 게 아니라 콘도를 관광상품으로 내놓는 거다. 그러면 이것이 싸구려 단체관광에 매물로 나오게 된다. 제주도 땅을 이런 걸로 채워버리면 부가가치 높은 고품질 관광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든다. 제주도 땅은 매우 제한된 자원이므로 가장 효율적이고 품질 위주로 써야 한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문제 있는 투자가 많다.”

―외국인 투자가 늘고 관광객이 많아져도 정작 제주 사람들의 수익으로 돌아오는 건 별로 없다고 한다. 중국 여행사로 들어와 중국 콘도에 묵고 무료 관광지만 간다던데….


“그런 걸 바꾸겠다는 것이다. 난개발도 문제고 우리 땅이 너무 쉽게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외국인 투자에 대해 제대로 된 감독기구와 투자 질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제주도를 바꾸고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바꾸겠습니다’라고 했다. 무엇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제주도에 카지노 감독기구를 만들면 육지가 따라올 것이고, 전기자동차로 에코시티를 만들면 역시 따라올 것이다.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성장 모델도 만들 수 있다. 중국의 투자와 관광객을 흡수하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국이 주도권을 가지고 경제적인 효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그런 모델을 만드는 데 제주도가 시험대에 서 있다. 대한민국을 위한 실험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있다.”

▼ 제주의 전설, 개혁의 ‘젊은 피’… 정치문제엔 철저히 몸조심 ▼

■ 원희룡 지사는…


원희룡은 제주 청소년들에게 전설이고, 부모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며, 40, 50대 중장년들에게는 자부심이다. 제주에서 원희룡만 한 인물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다고 제주 사람들은 말한다.

서귀포시 중문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공부를 빼어나게 잘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서울대에 수석 입학하고 사법시험에 수석 합격했다. 검사 생활을 하다 2000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젊은 피’로 수혈됐지만 정치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개혁소장파로 종종 당 주류와 엇나가는 소리를 해 미움을 받았다.

최근 세월호 특별법 논란으로 꽉 막힌 정국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할 줄 알았는데 중앙 정치에 대해서는 철저히 로키(low key)로 나갔다. 도정(道政)에 집중하고 정치적 발언은 안 하기로 작심한 듯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어떻게 보나.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세월호 때문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타격을 입어 상당히 어려운 상황이다. 안타깝고 답답하다.”

―박 대통령과 단독으로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있나.


“만난 적 없다고 하면 창피하고, 만났다고 하면 언제 만났냐고 물을 테니 웃음으로 대신하겠다.”

―2006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사학법 개정 반대 투쟁을 할 때 “박 대표는 편협한 국가정체성 이념에 비춰 자기 틀에 안 맞으면 전부 빨갱이로 본다. 박 대표의 이념투쟁은 병이다”라고 비판했다가 공개 경고를 받았다. 그때 일을 어떻게 생각하나.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깨끗하게 승복하는 대인(大人)다운 모습, 국가관이 서 있는 걸 보고 박 대통령을 인정하게 됐다.”

―새누리당에서 개혁적인 목소리를 냈지만 실제 개혁한 게 뭐 있냐는 비판이 있다.

“그런 얘길 하기는 쉽다. 새누리당은 위기에 처하면 바꾸려고 발버둥치다가 평상시로 돌아오면 안이해진다. 실제로 몸부림쳤던 사람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법대 동기인 조국 서울대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했다 찬성한 이유’를 페이스북에 공개 질의하자 “정치하는 동안 가장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지점”이라고 답했는데….

“대통령이 ‘우리 당이 선거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 한 정도의 발언을 갖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은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데,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헌법기관들이 그래서는 안 된다.”

―그때 동조하지 않았나. 사람 죽여 놓고 후회한다면 끝인가.

“끝까지 반대하다가 당론 투표로 가서 결국 찬성표를 던졌다.”

―무상급식은 본인의 공약이기도 했는데 오세훈 시장이 무상급식 반대를 걸고 시민투표를 할 때는 오세훈을 지지했다. 중요한 순간에 소신을 바꾸는 기회주의자인가.

“오세훈의 정책을 찬성한 게 아니라 신임투표로 가면 서울시당 전체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내 입장을 고집하지 않고 비켜선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겠다는 건가.


“그때 그때 제 모든 양심과 모든 소신을 걸고 모든 몸무게를 실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비판을 의식해 행동하진 않겠다.”

신연수 논설의원 ysshin@donga.com
#원희룡#제주지사#카지노#서비스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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