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에서, 소년이 서울에서 전학 온 윤초시네 증손녀와 나누는 대화다. 이 대목에서 국어선생님은 읽기를 멈추고 ‘보랏빛’은 죽음을 상징한다고 설명한 뒤 칠판에 ‘복선(伏線)’이라고 쓰면서 ‘보랏빛’은 비극적인 결말의 복선이라고 덧붙인다. 보랏빛이 왜 죽음을 상징하는 걸까? 어둡고 우울한 느낌을 주는 색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배웠고, 배운 대로 가르치고 있는 익숙한 장면이다.
잠깐! 이 수업에 참견해 보자. 도라지꽃을 본 적 있는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혹시 선생님도 도라지꽃을 알지 못하는 건 아닐까? 도라지꽃이 무슨 색으로 피는지 알까? 소녀는 흰색과 보라색을 보고 ‘보랏빛’을 골랐다. 그 ‘보랏빛’ 느낌을 학생들이 알까? 이해인 수녀는 ‘엷게 받쳐 입은 보랏빛 고운 적삼’이라고 비유했다. 도라지꽃을 제대로 본 적도 없는 학생이나 선생님이 소녀의 말에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좀 더 ‘짓궂은’ 질문을 해보자. 꽃의 색깔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흰색이나 보라색으로 피는지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과연 몇이나 될까? 꽃의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안토시아닌이라는 식물색소다. 토양이 산성이면 붉은색을, 알칼리성이면 파란색을 띠게 만든다. 수국이나 라일락도 도라지처럼 흰색에서 보라를 거쳐 파란색에 이르는 대역에서 꽃의 색깔이 달라진다. 도라지꽃으로는 용액이 산성인지 알칼리성인지 파악하는 천연지시약도 만들 수 있다.
황순원의 ‘소나기’도 천연지시약도 모두 초등 5, 6학년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국어선생님이 도라지꽃의 보랏빛 비밀에 대해 살짝 언급해주거나, 과학선생님이 소녀가 보랏빛을 좋아한 이유에 대해 잠깐 건드려주기만 해도 수업 효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학교 꽃밭에 도라지를 심어놓고 학생들이 관찰하게 하는 것도 훌륭한 수업이 될 것이다.
문과·이과 통합교육과정을 만들기 위한 공청회가 12일 한국교원대에서 열렸다. 교육과정개정연구위원회는 2018년부터 한국사를 6단위, 사회와 과학을 각각 10단위씩 배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과학계는 개편에 대한 기본 방향도 제시하지 않은 채 과학 이수 단위를 축소하려 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교육부는 이를 문과와 이과 또는 일부 교과목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고, 연구위원회와 자문위원회를 통해 이해관계를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 위원들이 대부분 문과 출신이어서 이해관계 조정에 대한 논란은 다른 차원으로 번지게 됐다.
민주주의는 어떤 결정이나 결론에 이르는 합리적인 방법과 절차를 중시한다. 과학도 마찬가지다. 이번 개정안을 만드는 데 있어, 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데 있어 교육부가 진행한 방법과 절차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교육학을 전공한 인사 위주로 위원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교육과정 개편의 권력을 독점한 ‘교육마피아’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다.
어떤 방안을 수립하기 위해 위원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각계의 목소리를 어떻게 수렴할지에 대해 교육부는 사회과목에서 교육하는 대의민주주의와 수학과목에서 가르치는 대푯값에 대한 기본 개념을 학습할 필요가 있다. 도라지꽃의 보랏빛 비밀을 국어와 과학이 어우러지는 영역에서 탐구하듯이, 교육과정 개정안도 사회와 수학의 통합영역에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모두 중등교육과정에서 배우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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