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기업 여성 임원과 밥을 먹었다. 서울대 출신 재무통인 그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자녀를 둔 ‘워킹맘’이다. 서로 ‘직장맘’이란 공통점을 가진 탓에 이야기는 자연스레 아이들 교육 얘기로 흘러갔다. 그런데 나보다 10년 이상 육아 선배인 그는 “기업인으로서, 엄마로서 한국 교육이 정말 싫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 중학생인 딸이 학교에서 체육 수행평가를 치렀다. 줄넘기를 멈추지 않고 많이 해야 높은 점수를 받는 평가였다. 매번 선생님이 숫자를 세긴 귀찮으니 선생님 대신 아이들이 다른 친구의 수를 세도록 했다. 그런데 딸아이가 보기엔 분명 100개가 넘게 뛴 친구에 대해 아이들이 “100개가 안 된다”고 말했다.
딸아이의 순서가 됐을 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 본인은 분명 130개를 했지만 아이들은 입을 모아 100개가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친구가 높은 점수를 받는 게 싫어 집단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임원의 딸은 이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어 선생님께 수를 세 달라고 부탁하고 처음부터 다시 줄넘기를 해 기어이 130개를 뛰었다. 전력을 다하다 보니 줄넘기가 끝났을 때는 탈진할 정도로 지쳐 있었다.
이 임원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한국 교육의 총체적 문제를 본다”고 말했다. 첫째, 학생 평가와 관련된 것임에도 수를 세는 것조차 귀찮아 한 교사의 나태함. 둘째, 선생님의 믿음을 저버리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수를 세지 않은 아이들의 윤리의식. 셋째, 줄넘기를 뛴 개수마저 점수화해 줄을 세우는 숨 막히고 소모적인 입시제도. 그는 “강남에서는 ‘쌩쌩이’(줄넘기를 연달아 하는 것) 가점을 받으려고 1시간에 7만 원씩 주고 줄넘기 과외까지 한다”며 “이런 교육으로 도대체 어떤 인재를 기를 수 있냐”고 반문했다. 결국 이 임원은 최근 둘째 아이를 미국으로 유학 보냈다.
채용 시즌이다. 올해 역시 기업들이 뽑겠단 사람보다 수십 배 많은 구직자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기업은 “뽑을 친구가 없다” “좋은 사람 뽑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스펙은 좋은데 실력이 없거나, 실력은 있는데 패기가 없는 경우, 혹은 패기는 있는데 인간성이 별로인 경우 등 그저 그런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인재 가뭄’에 대해 한국 교육은 과연 당당하게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 발표된 한국의 미래 인구 분석 결과를 보면 2100년 한국의 인구는 현재의 절반도 안 되는 2222만 명으로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중 절반에 가까운 1071만 명이 65세 이상 노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상 채 500만 명도 안 되는 인재가 또 다른 1500만 명 이상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시대. 지금보다 훨씬 유능하고, 돈도 잘 버는 인재들이 많아져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인재를 만들기에 한국 교육은 너무 후진적이다. 이를 악물고 쇄신을 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백 년 앞을 보고 교육을 설계하는 리더십은 오랫동안 실종 상태다. 좋은 인재가 없으면 좋은 기업도 없다. 좋은 기업이 없으면 잘사는 한국도 없다. 늙어서 다 같이 곤궁해지지 않으려면 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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