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정치혼란이 깊어지고 있다. (세월호) 사고 원인의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 제정을 둘러싸고 여야당이 대립하면서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그제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침몰여파 한국 국회 마비’라는 제목 아래 이런 기사를 실었다. 요미우리는 “5월 3일 이후 법안 처리를 1건도 하지 못하는 마비 상태에 빠졌다. 정치의 정체로 경제 외교에도 영향이 우려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일본 언론들은 ‘정치적 결정이 빠른 한국의 대통령제’를 부러워했다. 그런 일본에서 한국정치의 경쟁력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것 같아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틀린 것도 별로 없는 기사라서 더 불쾌하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엔 계엄과 군대의 총검이 국회를 봉쇄했지만 2012년 개정된 국회법은 야당이 3분의 1 의석만 있으면 어떤 법안 처리도 사실상 가로막을 수 있는 칼자루를 쥐여주었다. ‘차라리 국회를 해산하라’는 비명 속에는 과잉민주주의가 낳은 신종독재에 대한 국민의 무력감, 절망감이 부글거리고 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2005년 우정공사개혁(민영화)법안이 야당과 일부 자민당 의원들의 반대로 좌절되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단칼에 의회를 해산시켰다. 그러곤 총선에서 의석의 3분의 2를 얻어 국정을 처리해 버렸다. 세월호법에 막힌 국회 마비가 계속되면 일본처럼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할지 알 수 없다.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이 그제 “국회가 통치불능 상태”라며 “내각제였다면 국회를 해산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긴급재정명령은 내릴 수 있어도 국회해산은 못한다. 국회가 자진해산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도 했다. 서울대 법학대학원장, 헌법학회장을 지낸 그가 헌법학자로서는 내각제와 대통령제에서 의회해산권의 유무를 얼마든지 해설할 수 있다. 하지만 국무위원인 장관 입에서 유신헌법과 5공헌법에나 있었던 ‘국회해산’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적절치는 않아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