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스코틀랜드는 민족감정보다 경제안정을 택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0일 03시 00분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역사적 앙금은 뿌리가 깊다. 스코틀랜드는 켈트족,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으로 700여 년 전 앵글로색슨족이 켈트족을 정복했다. 1296년 에드워드 1세가 전리품으로 가져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한 ‘야곱의 돌’을 밟고 역대 잉글랜드 왕들은 대관식을 치렀다. 스코틀랜드의 민족적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스코틀랜드는 18일 분리 독립 주민투표에서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로 영국 연방에 남기를 선택했다. 6일만 해도 독립 찬성 여론이 반수를 넘겨 세계를 긴장시켰지만 뚜껑을 열자 그동안 나서지 않았던 ‘침묵의 군단’, 안정을 바라는 사람들이 막판 결집했음이 드러났다.

같은 나라가 된 지 307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과거 대 미래, 지역감정 또는 민족주의 대 경제안정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리 독립안이 부결된 것은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나 정치인의 포퓰리즘 약속에 매달리기보다는, 영국이라는 큰 우산 속에서의 경제적 이익을 향유하고 자치를 확대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석유경제학자 출신인 앨릭스 샐먼드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독립할 경우 북해 유전에서 나오는 돈으로 더 풍요롭게, 더 공평하게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식의 복지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독립이 가시화되자 파운드화를 쓸 수 없게 되고, 유럽연합(EU) 가입이 불투명해지며, 석유 수입도 떨어질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가 부상했다. 결국 스코틀랜드는 가슴보다 머리로 판단했다. 1921년 영국에서 독립하고도 오랫동안 빈곤했던 아일랜드가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잉글랜드에 못 미치는 스코틀랜드의 국민소득, 고용률 등 경제적 격차는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로 남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나 스코틀랜드에 약속한 과도한 선물비용 때문에 잉글랜드의 불만이 높아져 정치적 미래를 예측할 수 없게 됐다. 정치는 결국 경제에 달렸음을 스코틀랜드가 일깨워준 셈이다. 기득권 체제에 안주해온 권력층에는 남의 일이 아닐 듯하다.
#스코틀랜드#잉글랜드#분리#독립#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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