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소는 언제 키우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4일 03시 00분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세종특별자치시에 있는 정부세종청사는 국무조정실이 있는 1동을 필두로 15개의 건물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양이라는 설이 있어서 세종 사람들은 1동을 용의 머리, 15동을 용의 꼬리라고 부른다.

지난 월요일은 유독 용의 꼬리가 소란스러웠다. 교육부가 있는 14동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있는 15동 이야기다. 주말에 갑자기 전해진 송광용 전 대통령교육문화수석의 사퇴 소식 때문이었다. 이날 청사에서 마주친 기자와 공무원들은 서로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양쪽 모두 추측만 무성히 쏟아낼 뿐, 일언반구 설명도 없는 인사의 실체를 알 리 만무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후임 수석은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하마평과 업무 걱정으로 이어졌다. 특히 교육부는 몇 달간 서남수 전 장관의 면직과 김명수 장관 후보자의 낙마로 곤욕을 치른 터라 걱정이 큰 눈치였다. 교육부는 지난해 고교 한국사 교과서 문제에 매달리느라 각종 현안 처리에서 적잖이 실기했다. 올해는 인사 파동 때문에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개편,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 굵직한 현안들이 줄줄이 지연됐다.

교육부 공무원들을 지켜보면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업무에 짓눌려 있는데 진전은 더딘 일이 많다. 박근혜 정부를 돌아보면 근본적인 원인이 인선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정부 첫 교육문화수석은 문화부 관료 출신이었다. 교육과 문화 업무를 합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만만치 않은 와중에, 상대적으로 복잡한 교육 문제를 문화부 출신 수석이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소문이 슬슬 돌았다. 교육비서관은 교육 전문가이긴 하지만 교수 출신이라 교육부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스타일은 아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나 대학수학능력시험 영어 절대평가 등을 추진하는 청와대 쪽에서는 교육부가 너무 안 움직인다는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교육 공무원들은 교육 정책을 한번 바꾸면 파장이 엄청나다는 걸 체득한 이들이기에 기본적으로 수세적이다. 이런 풍토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복지부동으로 비치기도 한다. 특히 외부에서 교육부를 컨트롤하는 자리로 옮겨온 이들 중에는 교육부를 ‘저항세력’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수 출신의 한 전직 장관은 “교육부에 와서 회의를 해보니 실국장들이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는 보고를 잔뜩 하더라.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나 싶었는데 1년 정도 지나니까 이해가 되더라”라고 말하기도 했다.

교육은 유치원부터 초중고교, 대학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얽혀서 한 부분을 건드리면 다른 부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오는지 설명하려면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투성이라고 비난을 받는 입시나 학교 제도조차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오늘에 이른 이력을 들춰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도 있는 것이 교육 정책의 특징이다.

이렇게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끌고 가야 할 수장들이 정책도 아닌 일신상의 문제로 임명 과정에서 파문을 일으키거나 하루아침에 날아가는 건 심각한 손실이다. 수석이 물러났다는 소식에 당장 “업무 보고를 또다시 해야 하느냐”는 한숨이 나오는 것은 교육 공무원들이 인사 과정에서 너무 소모당했다는 방증이다.

가뜩이나 세종시 공무원들은 국회로, 청와대로 불려 다니느라 길바닥에서 하루를 보내는데 국회 파행에 인사 파행까지 겹치면 일이 될 리가 없다. 정주 여건은 둘째 치고 근무 여건도 조성이 안 되는 판국이다. 청와대는 관료 사회를 압박하지만, 정작 공무원들이 일을 못하게 만드는 건 누구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한때 개그 프로에 나왔던 유행어 ‘소는 누가 키우나’가 ‘소는 언제 키우나’ 하는 탄식으로 들려오는 나날이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정부세종청사#문화체육관광부#송광용#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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