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하 전문기자의 그림엽서]마터호른과 씨름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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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을 맞아 체르마트 마을이 제작한 앰블럼. 체르마트 관광청 제공
2015년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을 맞아 체르마트 마을이 제작한 앰블럼. 체르마트 관광청 제공
이것은 내년의 ‘마터호른 초등 150주년’을 기념해 그 아랫마을 체르마트(스위스 발레 주 칸톤)가 만든 엠블럼이다. 또 머잖아 판매될 그림엽서의 밑그림이기도 하다.

알프스의 마터호른 봉(해발 4478m)은 스위스와 이탈리아가 공유하는데 희비가 교차한다. 한마디로 스위스는 웃고 이탈리아는 운다. 이 멋진 모습이 체르마트가 있는 스위스 쪽의 전유물이어서다. 이탈리아 쪽에서 보면 영 밋밋해서 저게 마터호른일까 싶을 정도다.

언어도 달라 이름도 각각이다. 마터호른은 스위스가 붙인 독일어 이름이다. 이탈리아에선 몬테체르비노라 부른다. 산 아래 마을도 두 개다. 스위스엔 체르마트가 있고 이탈리아엔 브뢰유체르비니아가 있다. 국경선은 마터호른 봉 아래 고르너그라트 능선. 테오둘패스(고개·3292m)가 그걸 가로지르며 두 마을을 잇는다. 능선은 한겨울에 눈으로 덮인다. 마터호른 아래 빙하의 스키장은 이탈리아 마을까지 두루 아우르므로 스키어는 두 나라를 무시로 오간다. 거기엔 국경 표지는 물론 어떤 장애물도 없다.

마터호른 초등은 1865년의 일이다. 주인공은 이탈리아인도, 스위스인도 아닌 영국인 에드워드 휨퍼. 당시 80여 개의 4000m급 알프스 고봉 중엔 미답봉이 거의 없었다. 마터호른이 막바지까지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그만큼 험한 산이기 때문이다. 휨퍼 역시 7전 8기 끝에 성공했다. 봉우리 하나를 두 나라가 공유하니 초등 경쟁이 치열했음은 불문가지. 휨퍼의 첫 시도 땐 함께 야영한 이탈리아팀이 몰래 먼저 출발했다. 8차 등반 땐 이탈리아팀이 휨퍼가 체르마트와 브뢰유 양쪽 어디서고 가이드를 못 구하도록 왕따를 시킨 후 단독 등반을 시도했다.

뒤늦게 그걸 안 휨퍼. 홀로 테오둘패스를 넘어 체르마트로 돌아왔고, 마침 프랑스 가이드를 동반한 영국인 세 명을 만나 스위스인 부자(父子)를 더해 추격한다. 휨퍼의 승리. 이탈리아팀은 400m 아래서 휨퍼의 초등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런데 휨퍼 팀은 하산길에 사고를 맞는다. 네 명의 추락사. 생존자는 휨퍼와 스위스인 부자 등 셋뿐이었다. 추락할 때 자기만 살려고 팀원들을 연결한 자일을 끊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었다. 이 사고로 알피니즘은 한동안 경색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등반의 위험성을 지적한 게 계기다.

하지만 체르마트 마을은 달랐다. 휨퍼의 초등을 계기로 산악관광지로 각광받는다. 마을은 마터호른 봉을 보거나 오르려는 이들로 북적댔다. 1888년 철도가 놓이게 된 건 그 덕분. 1930년엔 전기철도로 바뀌는데 지금도 생모리츠와 체르마트를 오가는 ‘글레이셔 익스프레스(Glacier Express·빙하특급)’가 그것이다.

이 체르마트를 이달 12일 현대중공업 팀 씨름선수 네 명이 찾았다. ‘스위스 산악레슬링 축제’에 초청받은 것이다. 이들은 스위스씨름 ‘슈빙겐(Schwingen)’ 선수와 시범경기를 벌였다. 우리끼리 겨루며 한국 전통 씨름도 알렸다. 슈빙겐은 씨름과 90%쯤 같다. 다른 점이라면 평상복 차림에 샅바용 반바지를 겹쳐 입는 것, 샅바를 잡은 상태로 10∼12분 내에 상대의 양 어깨를 모랫바닥에 닿게 해야 한 판을 얻는 것 정도다. 나는 이런 씨름을 아이슬란드에서도 봤다. 거기선 팬츠 차림의 맨몸에 가죽샅바를 쓰는데 우리 씨름과 다르지 않다. 5000년 역사의 우리 씨름과 어떻게 닮게 됐는지 궁금증을 더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같은 날 우리 국회의원회관에선 ‘입씨름’이 벌어졌다. 무대는 씨름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방안을 찾으려는 포럼. 대한씨름협회장이 “국회의원들이 입씨름 대신 실제 씨름으로 겨루면 어떻겠느냐”고 농담조로 한 인사말이 발단이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면전에서 조롱한다’며 발끈했다. 글쎄, 이 정도는 유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도 싶은데….

그 장면을 보며 1992년 비슷한 마케팅 슬로건 때문에 첨예하게 대립한 미국 텍사스 주의 두 항공사(사우스웨스트·스티븐스) 대표가 떠올랐다. 기발한 방식으로 갈등도 해결하고 고객에게 신뢰와 감동도 선사했기 때문이다. 둘은 소송 대신 공개 팔씨름을 선택했다. 슬로건 사용권을 획득한 승자가 그걸 상대에게 양보하고 패자는 1만5000달러의 기부금으로 화답했던 감동의 유머경영에 박수갈채가 쏟아졌었다.

―체르마트(스위스)에서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
#체르마트#마터호른#스위스#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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