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14>노래방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6일 03시 00분


노래방에서
―김용원(1962∼ )

일상이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아픈 상처로 절뚝거리며 노래방으로 간다
어느 노래인들 추억이 서려 있지 않을까
생의 모든 명제와 숙제들을 불러내어
네 박자에 모든 처분을 일임해 본다
남자라는 이유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 사랑했어요
해후, 부산갈매기, 그 겨울의 찻집…
십팔번을 연이어 부르며 막춤을 출 때
나는 출세한 사람처럼 신명이 난다
누가 이처럼 심신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흐느끼고 아쉬워하며 목청 높여 결단한다
노래방, 닫힌 문이 열리고 맺힌 것이 풀어지는
이곳은 탕자들의 예배당이다


제 나이를 열 살 깎아서(애거사 크리스티처럼), 열다섯 살 연하 남자와 사귀던 친구가 생각난다. 그녀는 나이를 속인 고충으로 함께 노래방에 가지 못하는 것을 들었다. 노래방 선곡으로 연배를 들킬 수 있다고. ‘십팔번’ 노래는 유흥이 중요한 일과인 청춘 시절에 유행한 가요나 팝송이기 쉽다.

노래방에서 혼자 ‘남자라는 이유로’ ‘어쩌다 마주친 그대’ ‘사랑했어요’ ‘부산갈매기’, 노래마다 절절이 감정을 실어 ‘흐느끼고 아쉬워하며 목청 높여’ 부르고 막춤을 추는 사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화자는 ‘일상이 지뢰밭처럼 느껴지는 날이면’ 이렇게 혼자 노래방에 가서 ‘십팔번을 연이어 부르며’ 신명을 내고 푼단다. 노래방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마치 성소(聖所)처럼. ‘누가 이처럼 심신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고마운 노래방. ‘닫힌 문이 열리고 맺힌 것이 풀어지는/이곳은 탕자들의 예배당’이란다. 아주 오래전, 몇 차례 교회에 간 적이 있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호산나, 노래하자!/호산나, 부르자!’를 목청 높여 부르면 속이 후련했다. 예배보다 찬송가에 마음이 있었으니, 예배당은 나로 인해 탕자들의 노래방이었다.

시집 ‘당신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에서 옮겼다. 시인은 현재 교회 사무장이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아우르며 인간답게 살고자 안간힘 다하는 올곧은 신앙인의 염원과 절망과 환멸과 사랑이 순정하고 질박한 시편들에 담겼다. ‘당신의 기적만이 구원이 되는 이때/나는 당신께 기도할 수밖에 없으며/당신은 친히 이루실 수밖에 없나이다’(시 ‘겨울기도’에서)

황인숙 시인
#노래방에서#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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