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마켓 사장은 어린 시절 꿈꿨던 많은 장래희망 직업 중 하나였다. 온갖 군것질거리가 가득 찬 곳에서 TV를 보며 일하는 슈퍼마켓 사장이 초등학생 눈에는 ‘꿈의 직업’에 가까웠다.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주전부리와 생필품 시장을 독점하는 것처럼 보였던 슈퍼마켓 사장은 안정적인 삶을 사는 소시민의 전형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슈퍼마켓 사장으로 안정적 소시민의 삶을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건 외환위기를 지나면서다. 특히 동네 슈퍼마켓 사장을 포함한 분식점, 치킨집 사장 등 이른바 영세 자영업자들이 솥단지를 내던지며 시위를 벌인 ‘자영업 대란’은 ‘자영업자=안정적인 소시민’이라는 등식을 깨뜨렸다.
2000년대 들어 자영업자는 한국 경제의 대표적인 위험계층으로 자리 잡았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의 월 매출은 877만 원으로 2010년 990만 원보다 113만 원 줄었다. 임차료, 인건비,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을 뺀 영업이익은 지난해 월평균 187만 원에 그쳤다. 슈퍼마켓 사장을 포함한 도소매 자영업자가 창업한 지 1년 만에 폐업할 확률은 40%에 육박한다. 치킨집, 분식점 등 음식숙박업의 1년 후 폐업률은 43%로 더욱 심각하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수는 여전히 많다. 8월 기준 580만 명인 한국의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2.4%. 일본(11.9%), 미국(6.8%)의 두 배가 넘는다.
먹고살기 어렵다는데도 자영업자가 늘어나는 건 취업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40세 이하 청장년층 신규 자영업자 수는 2007년 134만 명에서 지난해 97만 명으로 줄고 있지만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를 포함한 50세 이상 자영업자는 계속 늘고 있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재취업에 실패한 뒤 자영업 전선에 뛰어든 이들이다.
부족한 노후 준비를 만회하고 안정적인 소시민의 삶을 최대한 길게 유지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자영업을 선택한 만큼 실패하면 큰 경제적 위험이 뒤따른다. 지난해 자영업 가구의 평균 부채는 8859만 원으로 2010년 7131만 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정부는 24일 자영업자 대책을 내놓으며 “안정적인 퇴로(退路)를 지원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에 대한 보호로 일관하며 과당경쟁을 부추기던 기존 자영업자 대책들과 비교하면 한발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부족해 보인다. 폐업 후 재취업한 자영업자에게 6개월간 100만 원을 지원한다는 ‘희망리턴 패키지’는 기존 정책에 폐업 컨설팅 지원만 더한 것이다. 생계형 자영업자가 유망업종으로 전환하도록 자금을 지원한다는 방안 역시 마땅한 기술이 없어 자영업에 뛰어든 이들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이번 자영업자 대책은 현오석 부총리 시절이던 5월에 발표하려던 것이 수차례 수정된 끝에 나왔다. 장고(長考) 끝에 선보인 대책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제2의 자영업 대란을 막기 위한 후속 대책들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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