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가스카르 항구에선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가 가슴을 치고 사랑 하나, 서서히 별똥으로 떨어진다
나는 투항했던가 감당 안 되는 빗물이 길을 막아버린 오늘 나는 마다가스카르에 투항했는가
젖은 그물에 엉켜 죽어가는 펠리컨을 보며 비틀스의 해산을 떠올렸다
항구에서의 세월 나의 마다가스카르에선 세월과 친해질 수 없다
오늘 또 뼈만 남은 노인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들짐승처럼 소리 없이 등 뒤를 지나갔다
마다가스카르의 어느 날 세월 같은 게 하나 지나갔다
나는 마다가스카르와 갈라파고스가 자주 헛갈렸다. 아주 먼 곳에 있는 섬이며, 생태계의 보고(寶庫)라는 공통점이 얕은 지식으로 저장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의 마다가스카르 ‘메뚜기 떼 공습’ 뉴스로 이제 좀 구별이 된다. 유럽풍의 아름다운 도시인 수도 안타나나리보의 하늘을 수십억 마리의 메뚜기가 뒤덮고 있었다.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는 전 세계 생물 20만 종 중 75%가 존재한다고 한다. 약 4억 년 전 출현해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물고기 실러캔스가 종종 발견되고 잡힌다는, 섬 자체가 ‘살아 있는 화석’인 마다가스카르.
슬픔의 ‘감당 안 되는 빗물’에 뼛속까지 젖은 화자는 흡사 ‘젖은 그물에 엉켜 죽어가는 펠리컨’이다.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노래가 가슴을 치고’. 뜬금없이 떠오르는 비틀스의 해산이나 어제오늘 본 게 아닌 ‘뼈만 남은 노인이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이나 화자의 가슴을 무너지게 한다. 아, 이별, 늙음, 죽음, 소멸…. 이 세월의 횡포들에 화자는 견딜 수 없다. ‘사랑 하나’가 그의 가슴을 칼로 긋듯 ‘별똥으로’ 떨어졌기 때문. 그렇게 ‘세월 같은 게 하나’ 지나갔기 때문.
‘항구에서의 세월’, 자기를 이방인으로 느끼는 화자의 그리움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향한 것이다. 어시장에 나온 실러캔스를 응시하는 네안데르탈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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