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복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하경제 양성화’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국세청의 세수(稅收) 확보 불똥이 중견·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들에까지 튀면서 “탈세와 상관없이 돈이 모이는 곳이면 세무조사다” “세무조사 때문에 중소기업 실적이 나빠졌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어제 국세청이 연 매출 100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 131만 곳에 대해 내년 말까지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세정(稅政)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투자심리 회복과 내수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와는 180도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경기 침체로 어려움을 겪는 조선 해운 건설 음식 숙박업과, 지식기반 산업 등 경제 활성화 4대 중점 분야 기업들이 세무조사를 면제받게 됐다. 국내 기업 508만 개 가운데 26%가 해당된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가혹한 세금(정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猛於虎·가정맹어호)’는 옛 글귀를 인용하며 “국민과 어려움을 함께하고 성실 납세자를 지원하는 기관으로 완전히 탈바꿈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부담을 느껴온 중견·중소기업들은 쌍수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올해 초 새누리당 원내대표 때 “지난해 세무조사를 지나치게 강화하는 바람에 기업들의 불만이 커지고 민심이 악화하는 요인이 됐다”고 청와대 만찬에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세무조사를 세수 확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정도(正道)가 아니듯,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 역시 바른 길이라고 할 수 없다. 정권이나 정책 기조가 바뀔 때마다 세무 행정이 오락가락해서는 국민의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임 청장이 “범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경제 활성화 노력을 세정 차원에서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국세청의 정치화’를 우려하게 한다.
세금은 법과 원칙에 따라 거두면 된다. ‘세무조사 면제’를 선물처럼 주겠다는 것은 평소 세무조사를 징벌처럼 생각한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래서는 “왜 나만 세금을 더 내느냐” “왜 툭하면 세무조사를 하느냐”는 조세 불만이 심해지고 ‘로비’를 해야 할 필요성도 커질 수 있다. 과거 김대중 정부는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세무조사를 벌이는 보복성 권력 행사로 오점을 남겼다. 이번에 임 청장이 봐주겠다는 중견·중소기업들도 대통령의 표정에 따라 세무조사를 자의로 하는 국세청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