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행이 수도권에 세운 지점들은 독특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건물 2층 또는 3층의 100m²도 안 되는 공간에서 4명의 직원이 업무를 처리한다. 10여 명이 빌딩 1층의 널찍한 영업점을 지키는 다른 은행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소규모 지방은행에 머물던 전북은행은 수년 전부터 전략적으로 수도권을 공략했다. 수도권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은행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자산이 시중은행의 20분의 1에 불과한 전북은행은 소형 점포를 차려 온라인 기반의 다이렉트 예금, 다이렉트론을 앞세워 고객 기반을 확장했다. 고객들이 지점에 나오지 않고 PC나 스마트폰으로 은행 일을 처리한다는 점에 착안한 전략이었다. 점포 임차료와 인건비를 절감해 예금금리를 더 주거나 대출이자를 낮춰줄 수 있었다.
전북은행의 전략은 주효했다. 지난해 수도권에서 다이렉트 예금상품 등으로 6500억 원의 예금 유치에 성공했다. 수도권 점포들은 1년6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 다른 은행 지점들보다 1년 정도 단축한 것이다.
올 상반기 NH농협금융지주에 인수된 우리투자증권 지점은 영업시간에도 한산하다. 직원들은 고객을 직접 찾아가 영업하느라 자리를 비우기 일쑤다. 고객들이 지점에 나오지 않으니 실적을 올리려면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투증권은 올 연말 NH농협증권과의 합병을 앞두고 상반기에 구조조정을 통해 2900명이던 임직원 수를 2500명으로 줄였다. 수년 전 120개였던 지점 수도 83곳으로까지 감소했다. 조직을 이렇게 슬림화하고도 실적을 유지하려면 영업방식을 직원이 고객을 찾아가는 쪽으로 바꿀 수밖에 없다.
금융노조가 이달 초 금융공기업의 복리비 삭감 반대 등을 내걸고 총파업을 한다고 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현실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거였다. 목적이 뭐든 지금 같은 때에 ‘쌍팔년도식’ 총파업이라니. 은행 창구를 찾는 고객이 많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터인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총파업이 있던 3일 은행 고객들은 대부분 파업 사실도 모른 채 지나갔다. 은행 노조원들의 참여가 저조했던 탓도 있지만 은행 고객들이 대부분 자동화기기나 온라인을 이용하기 때문에 창구 직원이 자리를 비워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은행 총파업 소식을 듣고 전북은행과 우투증권이 떠올랐다. 두 회사는 한국 금융업계가 처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혁신은 ‘일자리 킬러’다. 기술의 진보로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고 소비자가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기존 일자리는 사라진다. 지금 한국 금융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7월 말 현재 국내 금융업 종사자는 84만500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4만9000명 감소했다. 은행 증권 보험 카드사 등 전 업권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돼 1년 새 5만 개 가까운 일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신기술이 확산되고 인터넷 등 ‘비(非)대면 거래’가 급증함에 따라 금융회사의 일자리는 더욱 위협받을 것이다.
29일 뒤늦게나마 금융노조와 6개 금융공기업 노조가 30일로 예정된 2차 총파업을 유보한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 지금은 노조가 경영진에 얼마간의 현금을 요구하기 위해 파업을 벌일 때가 아니다. 그 시간에 경영진과 머리를 맞대고 앉아 기술혁신으로 위협받고 있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영혁신과 비전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라. 3년 임기 동안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는 금융계 최고경영자(CEO)들의 고질병을 금융계 근로자들이 더 잘 알지 않는가. 번듯한 금융서비스 일자리를 지키고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일은 경영진과 노조가 함께 짊어져야 하는 책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