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이다. 6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7일), 화학상(8일), 평화상(10일), 경제학상(13일)을 받는 영광의 주인공이 발표된다. 문학상은 매년 목요일에 발표됐던 전례로 볼 때 9일이나 16일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인류와 문명 발전에 기여한 주역을 선정하는 노벨상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끈다. 그렇다면 이보다 조금 먼저 발표되는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은 어떨까. 엽기 노벨상, 괴짜 노벨상으로 불리는 이 상은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노벨상을 패러디했다. 이그(Ig)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진짜(improbable genuine)’, ‘비열하고 품위 없는(ignoble)’ 같은 말에서 따왔다. 한마디로 황당하고 이색적인 연구를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이그노벨상은 미국 하버드대 과학잡지인 ‘규명 불능 연구 연감(AIR)’이 선정한다. 물리 문학 평화 의학 경제 생물학 의학 수학 환경보호 사회의 10개 분야를 시상하고 하버드대 샌더스홀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는 실제 노벨상 수상자들이 상을 준다. 처음엔 우스개 연구를 하는 괴짜 학자에게 주는 상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제 과학자라면 한 번쯤 받고 싶은 상이 됐다. 2000년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으로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받은 안드레 가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꿈의 신소재로 불리는 ‘그래핀’을 추출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웃자고 만든 상도 아니고 수상자 면면도 가볍게 보이지 않는다.
올해 이그노벨상 수상자들도 흥미롭다. 물리학상은 바나나 껍질의 마찰 계수를 연구한 마부치 기요시 일본 기타사토대 교수가 받았다. 그는 바나나 껍질이 작은 주머니 형태의 다당류 젤로 이뤄져 있으며 이것이 미끄러움을 일으킨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외 ‘고양이 키우기의 정신적 위험성’ ‘절인 돼지고기 조각으로 과다 출혈 막기’ ‘지구 자장과 개의 용변 보는 방향의 상관관계’ 등 재기발랄한 과제를 연구한 팀들이 수상자로 뽑혔다.
매년 이맘때면 한국 언론에 ‘왜 우리는 노벨과학상을 못 받느냐’는 기사가 단골로 실린다. 일본이 16명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사실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2002년 명문대 교수도 박사도 아닌 학사 출신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 씨가 노벨화학상을 받았을 때 이런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이그노벨상 수상자의 면면을 보면 왜 한국에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없는지 짐작할 수 있다.
국내에서 바나나 껍질이 왜 미끄러운지를 연구하겠다고 할 때 지원을 아끼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 같은 과제를 연구하겠다고 나서는 학자가 나올 수 있을까. 과학자들의 대단한 업적이 실은 얼마나 사소하고 엉뚱한 물음에서 시작되는지를 이해하고 격려하는 풍토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해도 노벨상은커녕 이그노벨상 수상도 몽상일 뿐이다. 노벨상이 만년 남의 잔치가 되지 않게 하려면 톡톡 튀는 창의성부터 꺾지 말고 키워줘야 한다. 하지만 창의성마저 ‘교육’시킨다는 한국 풍토에서 과연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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