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만 대통령총무비서관의 인사 청탁이라고 속여 대우건설에 취업하고, KT에 취업을 시도한 조모 씨(52) 사건은 웃어넘길 수 없는 세태를 드러낸다. 그는 지난해 7월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에게 “나는 이재만 비서관인데 내일 조모 씨를 보낼 테니 취업시켜 달라”고 전화한 뒤 다음 날 찾아가 거짓 이력서를 제출하고 부장으로 채용됐다. 올 8월에는 황창규 KT 회장을 같은 수법으로 속이려다 어제 검찰에 구속 기소됐다.
이 사건은 사기꾼보다 사기당한 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청와대 비서관 사칭 전화 한 통에 대기업 대표들이 위세에 눌려 속거나 속을 뻔했다. 대우건설은 조 씨가 이력서에 적은 모 신학대 석사, 모 대학 겸임교수 같은 내용이 전부 허위였으나 걸러내지 못했다. KT에서도 황 회장이 만나본 뒤 비서실이 청와대에 확인하는 과정에서야 사기임을 알아냈다. 청와대가 보낸 사람이 맞았으면 채용했을지 어쨌을지 궁금하다.
조 씨가 거론한 이 비서관은 박근혜 정부의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핵심 측근 3인방 중 한 사람이다.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현 정권의 숨은 실세라고 주장하며 지어낸 조어(造語) ‘만만회’에서 박지만 정윤회와 함께 꼽혔다.
이번 사건을 청와대의 불투명한 인사스타일이 빚어낸 촌극이라고 볼 수도 있다.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와 견줘보면 그리 뜬금없지도 않다는 점이 비극이다. 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 내정된 박완수 전 창원시장은 공항 관련 전문성이나 경영 경험이 전무한 친박(친박근혜) 인사다. 4월 새누리당 경남도지사 경선에 나갔다가 떨어진 그가 친박이라는 점 말고 어떤 점이 뛰어나 기획재정부가 압축한 후보 2명을 물리고 재공모를 통해 낙점됐는지 의문이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인사가 판치니 숨은 실세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실세를 가장한 사기 행각까지 벌어진 것이 아닌가.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지분의 절반 이상을 보유하고 있고 KT는 공기업 체질이 여전해 청와대 입김에 약할 수 있다. 그래도 엄연한 민간 기업인데 청와대를 사칭한 전화 한 통화로 취업이 가능할 수 있다니 대졸 백수들이 통탄할 일이다. 청와대와 일부 기업의 관계가 아직도 과거 자유당 때, 또는 권위주의 정권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