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북한 노동자들의 꿈 ‘해외 파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외국에 노동자로 파견돼 달러를 벌어가는 것은 북한 주민의 꿈이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중국 단둥에 문을 연 외화벌이 식당에 줄을 맞춰 출근하는 북한 여성들. 동아일보DB
외국에 노동자로 파견돼 달러를 벌어가는 것은 북한 주민의 꿈이다. 사진은 지난해 2월 중국 단둥에 문을 연 외화벌이 식당에 줄을 맞춰 출근하는 북한 여성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카타르에 간 북한 건설노동자 이북남(가명) 씨. 수만 리 타향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그가 하루 14시간씩 고된 노동을 버티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북한에서 간부가 되면 뇌물로 더 많은 돈을 챙길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간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승진의 희망을 버린 북한 남성에겐 외국에 노동자로 나가는 것이 새로운 꿈이 됐다. 북한에선 남성에 대한 조직통제가 심한 데다 장마당에 앉아 장사하기도 여의치 않다.

해외 파견자도 출신 성분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주로 평양 출신이 많이 발탁된다. 이 씨가 소속된 대외건설지도국은 산하에 18개의 건설사업소를 갖고 있으며 종업원의 30%가 해외에 파견돼 있다.

해외에 나가면 국가계획이란 명목으로 돈을 벌어 바쳐야 한다. 건설 노동자는 1년 국가계획이 6000∼7000달러 정도다. 그 이상 추가 수입은 자기 몫이다.

북에선 “3년 동안 중동에 나갔다 오면 3만 달러, 러시아에서는 1만 달러를 벌어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업소가 수주한 공사장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절대 그렇게 벌 수 없다. 개별적으로 또는 끼리끼리 주택 수리, 건설, 청소 등 현지인의 청부 작업을 닥치는 대로 따내야 목돈을 벌 수 있다.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청부 작업에 나가려면 파견 나온 보위원에게 뇌물을 상납해야 한다.

고급 기술자나 숙련공은 다른 노동자에 비해 더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사람은 3년 뒤 소환돼 들어갔다가도 대개 뇌물을 주고 다시 나온다. 오래 지낼수록 현지에 인맥이 쌓여 청부 작업을 따내기가 수월해진다. 보위원도 돈을 많이 벌어오는 기술자의 장기 외출은 쉽게 승인한다. 10년 이상 나와 있는 북한 기술자는 특히 러시아 연해주에 많다. 중동보다 벌이는 적지만 그 대신 통제가 약하고 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날씨, 음주를 포함한 음식문화, 작업 강도와 시간도 중동보다 낫고 가끔 집에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한번 해외 물을 먹은 사람이 또다시 나오려고 기를 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북한에서만큼 조직생활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고 일한 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해외의 선진적인 삶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신 해외 무역기관 책임자로 파견 나오면 더 좋다. 무역기관 대표 정도면 국가계획 과제가 일반적으로 월 1만 달러에 이른다. 하지만 이 과제를 수행하긴 매우 어렵다. 그래서 보통 계획의 절반만 하고 대신 소환 권한을 틀어쥔 간부들에게 1000달러 정도 뇌물을 주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남는 장사다. 다른 대표들도 피차일반이라 남보다 크게 뒤지지만 않으면 된다. 아프리카에 파견된 의사는 국가계획을 수행하고도 3년 동안 5만 달러를 벌어올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유학생으로 뽑히는 것도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유럽이 제일 선호되는데 해당 국가가 유학생에게 주는 월 1000∼1500달러 수준의 생활비를 아껴 남긴다. 유럽에 유학 가면 연평균 5000달러를 남길 수 있다고 알려졌다. 중국 가는 유학생은 제일 불쌍하다. 중국 정부에서 월 2000위안을 주지만 북한대사관에 이런저런 명목으로 빼앗기고 나면 연 1000달러를 저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과거엔 해외 파견 근로자 대다수가 남성이었지만 최근엔 여성도 중국에 노동자로 많이 나간다. 가장 흔한 직업은 피복공장 재봉공이다. 중국에 나온 여성은 계획을 다 해야 월 80∼100달러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여성 노동자의 목표는 1년에 1000달러 모으는 것이다. 중국의 유학생과 비슷한 수준이긴 하지만 남성 건설 노동자의 10∼30%밖에 안 된다. 청부 작업을 거의 할 수 없어 책임자가 국가에 계획 금액을 바치고 난 뒤 나눠주는 돈밖에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외에 나오려는 여성은 줄을 섰다. 중국의 북한 식당 접대원은 피복 노동자에 비해 두 배 수준인 연 2000달러를 벌 수 있다. 하지만 접대원은 미모와 젊음, 예능이 뒷받침돼야 하며 경쟁도 심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북한이 해외에서 번 돈은 빼앗진 않는다는 것이다. 외화 다발을 보면 세관에서 이런저런 트집을 걸어 까다롭게 굴긴 하지만 뇌물을 좀 주면 통과할 수 있다.

현재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는 5만 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해외에서 얼마나 벌어 가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이 오랜 취재를 통해 이 칼럼을 쓰게 된 이유다. 열사(熱沙)의 땅에서, 시베리아의 동토에서 이들이 피땀 흘리며 벌어온 외화는 오늘날 북한 주민의 삶을 떠받치는 기둥으로, 장마당으로 표현되는 시장경제의 윤활유가 되고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간부#뇌물#해외 파견자#국가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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