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호 전문기자의 안보포커스]전작권 전환, 7년간의 시행착오와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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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전문기자
윤상호 전문기자
“국내정치가 국가의 대외정책을 좌우한다.”

미국 정치학자인 잭 스나이더는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관계를 이렇게 규정했다. 한 국가의 대외 행동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으로 내부 정치를 지목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대외정책은 집권세력 등 ‘정치 엘리트’들이 벌이는 자국 내 권력다툼의 결과물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 정치세력은 자신의 생존이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상대로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한편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주장은 한국과 미국이 7년 넘게 합의와 연기를 거듭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작권을 전환하는 작업은 한미연합사령부 해체 등 한미 군사동맹과 대북방어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중대한 외교 안보 현안이다. 그 결과는 유사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국가 안위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건(북한 위협)’과 ‘능력(한국군 자위태세)’을 철저히 따져서 신중에 신중을 기해 추진했어야 옳다. 자칫 반세기 넘게 공들여 쌓아온 한미관계를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와 경고도 심사숙고했어야 했다.

하지만 전작권 전환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노무현 정부는 ‘전작권 환수(전환)’를 ‘주권 바로세우기’로 규정했다. 한국이 미국에서 전작권을 가져와야 대북 군사협상을 주도할 수 있고,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는 ‘자주(自主)군대’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설파했다. 전작권은 주권의 문제가 아니며 핵무기까지 거머쥔 북한의 도발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연합사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반박하면 ‘친미 사대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처럼 전작권 전환 결정의 이면에는 반미 기류에 편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우리 민족끼리’로 포장된 북의 대남유화 술책에 장단을 맞추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었다.

반면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인 북한의 핵위협 등 냉엄한 안보 현실에 대해선 눈과 귀를 닫았다. 오히려 군 통수권자는 ‘핵이 미제(美帝) 침략의 방어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일리 있다고 두둔했다. 연합사 해체로 초래될 전력 공백을 메우는 데 들어갈 천문학적인 예산 문제도 ‘장밋빛 낙관론’으로 덮었다. “이건 안보를 금가게 하는 자해행위”라고 진언해야 할 군조차 침묵을 지켰다. 이 밖에도 전작권 전환 결정이 국가 안보를 방기한 ‘정치적 포퓰리즘’의 산물임을 증명하는 사례는 더 많다.

그 후과(後果)는 어떠한가. 한국은 전작권 전환 합의를 연거푸 번복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로 인한 상호 불필요한 억측과 오해, 한미관계의 신뢰 저하 등 부작용이 크다. 안보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전작권 전환을 서두르다가 주워 담기를 되풀이하는 ‘혈맹’을 바라보는 미국 내 시선도 불편하다. “워싱턴 일각에선 ‘과연 한국이 전작권 전환을 실행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전직 미 국무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양국은 이달 하순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예고했다. 양측은 전환 시기의 합의문 명기 여부 등 핵심 쟁점을 놓고 막판 조율 중이다. 미국은 합의문에 전환 시기는 빼고 전환 조건만 명시하길 바라는 눈치다. 2012년(1차)과 2015년(2차)까지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하고도 한국의 요구로 모두 무산된 전철을 더는 밟지 않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반면 한국은 전작권 전환의 무기한 연기나 취소라는 내부 비판을 우려해 대체적 시기라도 합의문에 명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측은 전작권 전환이 연기된 만큼 연합사와 미 2사단 예하 포병여단을 서울 용산과 한강 이북지역에 각각 잔류시키길 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국회 비준을 거친 미군기지 이전 계획을 수정하기 힘들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 안보체제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작업이다. 그 초점은 대북 억지력을 강화해 국가 안위를 보장하는 데 모아져야 한다. 조건과 능력 측면에서 준비가 덜 됐다면 무리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다. 또다시 정치적 논리나 명분 때문에 책임도 지지 못할 정책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시행착오는 지난 7년으로 충분하다.

윤상호 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전시작전통제권#대외정책#미국#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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