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삼성전자 3분기(7∼9월) 잠정 실적이 공개됐다. 작년 이맘때보다 60%나 급감한 이익에 사람들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새다. 언론과 증권시장뿐 아니라 사실상 삼성과 아무 관계없는 보통사람들까지도 삼성, 나아가 국가 경제의 앞날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인터넷 댓글을 봤다. ‘이런 식이면 몰락하는 것도 한순간일 듯ㅜㅜ’, ‘삼성도 까딱하다 소니 되는 거 아님?’부터 ‘이러다 한국 망하는 건가-한 기업이 망한다고 나라가 망하면 그게 나라냐-그래도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로 이어지는 댓글 설전도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서 ‘삼성’이란 사실상 곧 ‘한국 경제’, 그 자체였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삼성에 대한 의존도가 크다는 뜻이기도 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의존 경제구조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한국 경제는 ‘대기업바라기’ 구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일단 지금까지는 대기업들이 잘나가줬기 때문에 절박한 위기감이 없었다. 또 중소·중견기업 등 다른 부분을 키워 ‘본원적 경쟁력’을 높이자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뾰족한 수도 없는 게 문제였다.
당장 정부부터가 그랬다. 말로는 중소·중견기업이 중요하다면서도 재빨리, 쉽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려니 정부의 중요한 정책 타깃은 대부분 대기업이었다. 고용 창출이 필요하면 정부는 중견·중소기업 일자리 창출을 고심하기보단 대기업을 압박해 채용 규모를 늘리게 했다. 투자 확대가 필요하면 장관이 총수들을 불러 모아 ‘○○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런 식으로 정부는 자신들의 성과를 ‘이룩해’왔다.
그 사이 중소·중견기업들은 정책적·사회적 관심 사각지대에서 지지부진하게 지냈다. 당장 일자리 창출만 해도 그렇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할 혁신적 정책을 내놨다면 중소기업도 살고 일자리도 늘릴 수 있었을 테지만 이른바 이러한 ‘본원적 경쟁력’을 높일 정책들은 ‘작년 버전’에서 발전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담당 공무원이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면 다시 본질적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흘렀다.
이렇게 오랫동안 대기업만을 ‘비빌 언덕’ 삼아온 ‘허리 없는 경제’ 속에서 대기업들의 입지가 급격히 좁아지자 가히 이 땅엔 국가적 위기감이 엄습하는 모양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대기업들의 실적 부진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장기적 추세라는 해석이 많다. 다시 말해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삼성과 현대차가 고용을 줄이고, 투자를 못하며, 돌파구를 못 찾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과연 한국은 ‘대기업 없이도 잘살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몇몇 대기업의 실적과 고용, 투자에 연연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아갈 자신이 있는 걸까. 이런 질문에 반드시 답을 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삼성과 헤어져도 잘살 수 있는, 진짜 건강한 국가 경제에 대한 절실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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