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라는 직업을 택했을 땐 여러 이유가 있었다. 아름다운 곳을 가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매력도 작용했다. 실제 자연은 사진기자에게 중요한 취재원이다. 우주에서 벌어진 개기월식도, 피고 지는 꽃의 고운 색깔도, 철새들의 군무가 하늘에 수놓은 아름다운 선들도 사진기자에게는 중요한 일거리다. 하늘을 바라봐도 되는 직업, 참 멋져보였다.
2개월도 더 남은 상황이지만 올해는 참으로 사진기자들에게 힘든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자연의 모습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것은 사치였다. 그만큼 신문 지면도 각박했다. 2월의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를 시작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서울 지하철 상왕십리 추돌 사고,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장성 요양병원 화재, 광주 도심 헬기 추락사고,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에 잇단 싱크홀까지…. 사진기자들이 기록해야 할 슬픔이 너무 많았다.
6일 한 일간지 인터넷판이 보라색 티셔츠를 입은 5명의 초등학생들이 손잡고 운동장을 뛰는 사진을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발견해 보도했다. 요즘 일반인이 찍은 이 사진이 사진기자들의 사진보다 더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연골이 없는 병 때문에 항상 달리기에서 꼴찌를 하는 친구를 배려하는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의 모습에 어른들은 눈물을 흘렸다.
처음에는 이 사진이 정치색이 강한 사이트의 유머 게시판에 올라왔다는 주장 때문에 진실성을 의심받았다. 또 출처가 불분명해 ‘자작’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다.
8일 아침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를 취재하기 위해 집을 나서면서 차의 라디오를 켰다. 프로그램에 한 여교사가 연결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달리면서 눈물을 흘리던 그 학생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이어서 아버지가 연결되었다. 인터넷에 올랐던 사연은 진실이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기자의 차는 국회를 지나 올림픽도로로 들어섰다. 도로변은 가을색이 완연했다. 연보라색의 벌개미취와 방울꽃, 털이 복슬복슬한 수크령이 만발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흰 꽃들도 보였다. 서울을 벗어나자 아직 벼를 베지 않아 황금빛을 뽐내는 들녘이 펼쳐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베리아에서 한반도로 찾아왔을, 푸른 하늘을 비상하는 두루미들도 보이겠지.
그러고 보니 자연과 어린이는 많이 닮았다. 자신이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하게 해낸다. 사진의 주인공인 용인의 어린이들은 국민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증명했잖은가. 그래서 누리꾼들은 ‘눈물나게 고마운 사진’이라는 이름을 붙여 여기저기 퍼 나르고 있다.
국정감사가 진행 중이다. 정치인들은 올 한 해의 국정을 총 정리하고 내년도 예산을 꼼꼼하게 계산해 합리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멋있는 풍경 같은 사진을 국회에서 기대한다면, 그 사진을 국민에게 연말 선물로 주기를 바란다면, 기자는 아직 철이 덜 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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