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도, 해마다 화제가 됐던 레드카펫 위의 여배우 패션도 ‘다이빙벨’ 논란 속에 가려졌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기이한 풍경이다.
이달 1일부터 8일(오후 4시)까지 트위터와 블로그를 통해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언급한 문서는 7만9325건이다(검색어: 부산영화제+부산국제영화제+BIFF).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언급량 8만7664건에 비해 1만 건 정도 줄어든 수치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언급된 전체 연관어의 압도적 1위는 3만4146건을 기록한 ‘다이빙벨’이 차지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은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이종인 대표(알파잠수기술공사)의 다이빙벨 투입 논란을 중심으로 언론의 보도 태도와 정부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바라본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안해룡 씨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가 공동 연출을 맡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다이빙벨’의 상영불가 방침을 밝히면서 외압 논란이 시작됐다. 여기에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가세했고 문화체육관광부가 불편한 심기를 보이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5일 밤 해운대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을 만나 “문체부로부터 ‘다이빙벨’을 상영하면 내년 예산 지원을 안 하겠다는 통보를 구두로 받았다”고 말하면서 파장이 더욱 커졌다. 이튿날 문체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문체부는 부산국제영화제 국고 지원과 관련해 이용관 집행위원장에게 어떠한 언급도 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지만 이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로부터 60여억 원, 문체부로부터 14여억 원을 지원받는다.
전체 연관어 2위는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2만542건)가 차지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아이돌 그룹 ‘엑소’ 멤버 도경수의 영향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주인공 선희(염정아)의 아들이자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 역을 맡은 도경수의 출연으로 엑소의 팬덤 현상이 SNS에서 강하게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말해주듯 인물 연관어 2위에 ‘엑소’(3543건)가 올랐고, 3위엔 부지영 감독(3098건)이, 7위와 8위에는 영화 ‘카트’ 주연배우인 염정아(1779건)와 문정희(1474건)가 각각 올랐다.
전체 연관어 3위는 ‘인사’(1만6167건), 4위는 ‘무대’(1만5587건)가 차지했다. 지난해 전체 연관어 1위였던 ‘배우’는 올해 1만1385건으로 5위에 머물렀다. 이어 ‘상영’(1만885건) ‘감독’(7214건) ‘BIFF 빌리지’(6431건) 등이 뒤를 이었다. 9, 10위는 ‘다이빙벨’ 상영 논란과 관련해 5879건의 ‘지원’과 5386건의 ‘국고’가 차지했다. 국고 지원과 부산시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로선 최대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인물 연관어 1위는 영화 ‘해무’에 출연한 원조 아이돌 ‘박유천’(9431건)이 차지했다. 4위는 서병수 부산시장(2533건), 5위는 이상호 기자(2493건), 6위는 이용관 집행위원장(2397건)이 차지해 ‘다이빙벨’ 상영을 둘러싼 논란이 영화제를 ‘지배’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2013년 전체 연관어가 배우, 스타, 레드카펫, 아이돌, 개막식 등으로 나타났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언급된 심리 연관어 1위는 3087건의 ‘좋다’가 차지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2위엔 2161건을 기록한 ‘대단하다’가 올랐는데 내용을 보면 정부와 시 당국이 예산 지원을 볼모로 영화제에 출품된 영화의 상영에 압력을 행사하는 풍토를 비판하는 냉소적인 글이 대부분이었다. ‘대단한 대한민국’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다.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공개하다’가 1394건으로 3위를, (세월호) ‘참사’가 1387건으로 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다이빙벨’ 논란이 이번 부산영화제의 전부는 아니다. 뒤이어 ‘예쁘다’(1315건) ‘웃다’(1006건) ‘빛나다’(981건) ‘감사하다’(923건) 등이 올랐고 전체 긍정·부정어 분포를 보면 긍정어가 52.3%로 부정어 23.8%를 압도했다. 다수의 관객들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예년처럼 즐기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논란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상영 여부에 대해 정부 당국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논란을 뚫고 6일 전격 공개된 ‘다이빙벨’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임권택 감독은 오히려 영화제에 출품된 300여 편 가운데 한 편일 뿐인 작품을 정부가 화제작으로 만들어 준 꼴이라고 비판했다. 영화에 대한 평가와 영화의 상영 자체를 결정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부산영화제 측과 정부, 관객이 지혜를 모아 혹독한 성인식을 치른 부산국제영화제를 한층 더 성숙한 축제로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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