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유력 인사들의 이름이 언론의 사건기사에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뭇 시선은 편치 않다. 지도층 인사들의 각종 일탈에는 여러 원인이 섞여 있지만, 그중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특권의식’이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6일 ‘지도층 인사의 일탈과 특권 의식’을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일탈이 이어지면서 특권의식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특히 일부 세월호 유가족의 대리운전기사 폭행사건 과정에서 나왔다는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말은 여러 논란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의 특권의식을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이진강 위원장=사전에서 ‘특권’이란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특정인의 자격이나 신분에 따라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 또는 이익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특권에 ‘의식’이라고 하는 정신 작용이 더해지면서 ‘특권의식’ 하면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봤듯이 특권 자체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특권의식이 만연해서 실제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지, 혹시 우리 스스로가 특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적으로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짚어 보아야 합니다.
고희경 위원=세월호 유가족 폭행사건의 경우 유족이 특권을 가지는 사람이 되고, 이에 유족이 지도층이냐고 반문하는 목소리도 들립니다. 이 사건에 ‘특권의식’과 ‘사회 지도층’ 등 여러 개념이 개입돼 혼란스러운 것 같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정치적 성향이 다른 언론 간에 강조하는 바가 다릅니다. 정치적 입장을 위해 ‘특권의식’ 개념을 끌어다 쓰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를 하고 싶습니다. 지도층이 생각하는 특권의 기준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기준에 차이가 있고, 차이의 충돌에서 최근 여러 문제가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김성태 위원=적절하지 못한 사회 지도층의 언행이 최근 보도되면서 여러 원인이 얘기되고 있습니다. 논의의 핵심은 권력층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윤리의식을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언론이 사건을 극화해 드라마틱하게 보도하면서 개인의 문제가 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고위층의 부적절한 행위에 대한 공적 논의는 필요하지만 개인적 일탈의 문제인지, 사회 문화의 문제인지 성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는 말에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갑을 관계’와 ‘완장’의 느낌이 묻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김 위원=언론 보도를 얘기하자면 제주지검장 ○○○이 아니라 제주지검장, 전직 국회의장 ○○○이 아니라 전직 국회의장, 이런 식으로 제목이 뽑혀 나옵니다. 이러다 보면 피해자가 조직 자체가 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은 개인에게 집중해서 보도하는 게 맞습니다. 대상이 일반인이면 뉴스거리가 안 되고 고위층 인사라면 뉴스가 되는 언론의 속성은 이해합니다. 다만 특정 개인의 문제가 조직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박원재 스탠더드에디터=개인적 일탈이라 하더라도, 현직 지검장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라면 뉴스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죠. 최근 문제가 됐던 군사령관 음주 사건의 경우도 해당 인사의 직무 수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건이어서 뉴스 가치는 충분했다고 봅니다. 언론 간의 취재 경쟁이나 술과 성 같은 자극적 소재 때문에 사건이 저절로 확대 재생산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 위원장=유명인의 일탈이 기사 소재가 된다는 점은 이해합니다. 다만 개인을 넘어 조직의 문제로 확대하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과 국회의원이 특권의식을 이용해 서민을 압박했다’라는 식의 단면적 보도는 일반인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에는 유용하겠지만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에 항상 경계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개인적 일탈행위 이후에 그 개인이 소속된 진영 혹은 집단이 보이는 반응에서 오히려 특권의식이 더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부패를 내걸고 당선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후보를 매수한 정황이 밝혀졌는데도 진보진영 일각에선 ‘특권교육에 반대하고 혁신교육을 지지한다’는 식으로 곽 전 교육감을 감쌌습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가 불거졌을 때도 당내에선 반성은커녕 ‘세상에 100% 완벽한 선거는 없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나와 남의 도덕성을 다르게 재는 이중 잣대, 자기 진영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오만함이 일반인의 평균적인 인식과 큰 괴리가 있기에 특권의식으로 비치는 것입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앞서 얘기됐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누리꾼들 반응 몇 가지를 정리해 봤습니다. 평범한 얘기지만 본질적인 가치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우선 공직자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리이지 군림하거나 특권을 행사하는 권력자가 아니라는 거죠. 공복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면 특권의식과 일탈 행동은 나올 수 없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지도층 인사들이 일탈 행동을 보일 경우, 자라나는 세대가 뭘 보고 배우겠느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만 옳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지도층이 아니라 겸손한 인성을 갖춘 지도층을 원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지도층이 사건에 연루됐을 경우 더욱 공정한 법 집행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특권의식 논란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 위원장=자칫 걱정되는 점은 특권의식이라는 소재를 잘못 다뤄 권위 자체를 부정하거나, 나보다 나은 사람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정한 고유 권리, 특권을 가진 사람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되어야만 다른 사람도 나중에 그 권리를 가졌을 때 권위를 갖출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박 스탠더드에디터=권위는 권위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언론이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전에는 작은 일탈에 대해서는 관행으로 넘어가 주는 부분이 있었는데 세상이 변했죠. 사회 지도층에 대한 도덕적 기준이 엄격해지고 다른 기준과 충돌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고 위원=특히 권력층의 불법에 대해 무관용주의가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권위는 권위대로, 특권은 특권으로서 그것이 가지는 원래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죠. 그러기 위해서는 더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합니다. 성희롱 문제도 남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불거지는 일이 많습니다. 사회 지도층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선 개인의 일탈이라 하더라도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언론은 사회적 책임, 계도, 계몽 등의 기능이 있습니다. 성희롱 문제가 자주 보도되면서 일반인들도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언론의 역할이 컸다고 보는데 특권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계, 법조계, 학계 등을 바라보는 일종의 프레임인 거죠. 대중의 관심에 따라 보도 여부를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뉴스는 대중의 관심이 없어도 보도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뉴스란 칭찬해 줄 것은 칭찬하고, 잘못한 건 야단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위원=특권의식이라는 프레임으로 모든 걸 보려고 하는 것은 문제이니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일부 지도층의 일탈을 감시하고 재발하지 않도록 언론의 사회감시 기능에 대해 더욱 분발하라는 말씀으로 새기겠습니다.
이 위원장=요즘 각종 언론에 특권의식에 대한 기사가 자주 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칫 이 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오히려 사회에 큰 문제를 던질 요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을 이해하고 자기를 낮출 수 있는 방향으로, 동아일보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면서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 : 참석자 : :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고희경 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김성태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 박원재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도혜민 인턴기자 경북대 국어국문과 4학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