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위급 3인방의 인천 방문 이후 정치권 일각에서 2010년 천안함 폭침 이후 정부가 취한 5·24 대북 제재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곤 의원은 “(천안함 사건은) 북측 소행일 개연성은 높지만 100% 단정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같은 당 심재권 의원은 “남북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5·24조치를 우호적으로 해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에서도 5·24 때리기로 목청을 높이는 중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경원 의원은 “껍데기만 남은 5·24조치를 붙잡는 게 맞겠느냐. 걷어버리는 게 낫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태호 의원은 “북한에 대한 민생 인프라 구축을 골자로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5·24조치는 상충되는 부분이 많다”면서 “대통령이 어머니의 마음처럼 통 크게 치고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러다간 5·24조치 존치론을 펴는 사람은 껍데기나 챙기는 속 좁은 사람으로 몰릴 판이다.
▷고위급 접촉이 재개돼 남북이 머리를 맞대고 얽혀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자는 데 뜻을 같이한다면 5·24조치도, 금강산 관광 재개도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5·24조치의 원인이 된 천안함 폭침에 대해 사과도, 재발 방지 약속도 한마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 5·24조치를 미운 오리 새끼 취급한다면 대북 지렛대를 걷어차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조차 부인하며 최소한의 유감 표명조차 없는 북한에 면죄부를 주게 될 경우 안보상 손실은 일부 대북 투자 기업이 입은 손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5·24조치 해제에 대해 ‘모르겠다’가 44.4%로 찬성 31.5%, 반대 23.5%보다 높았다. 5·24조치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무관심 또는 판단 보류로 해석된다. 천안함 46용사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많은 사람들이 벌써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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