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없는 美, 안정 우선하는 中… 對北정책 변경 가능성 희박
최고위급 3人깜짝 남한 방문
진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北의 관계 개선 의지 보여줘
모처럼 만들어진 ‘해빙 무드’
정부 적극적 리더십 발휘해 단계별 맞춤형 교류정책 추진을
지난달 29일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북한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가 속한 연구소에서 펴낸 ‘맞춤형 인게이지먼트’라는 대북정책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워싱턴에 있는 여러 싱크탱크 연구원은 물론이고 미 정부 관계자 및 언론사와 학생들까지 100명이 넘는 청중이 자리를 꽉 채우고 주어진 두 시간이 모자란 듯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앞서 2주 전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남북관계 및 교류협력 발전 특별위원회’에서 같은 주제로 공개 공청회가 열렸다. 필자를 포함해 여야 특위위원 대부분을 비롯한 20명의 의원이 참석하였다. 참석한 특위위원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각자에게 주어진 10분의 질의응답시간을 꽉 채워 사용하는 등 세 시간이 넘는 장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토론에 임했다.
남북 문제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읽을 수 있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 이루어진 토론회를 보면서 국내외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정기국회가 ‘개점휴회’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특위위원들이 대부분 참석해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그만큼 현 남북관계에 대한 답답함과 함께 뭔가 새로운 돌파구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는 지난 7년간 답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임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긴장 국면을 맞기도 했고 현 박근혜 정부에서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지만 아직까지는 전임 정부와 실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고 있으나 고조되는 미중 간 전략적 불신과 한일 간 긴장 관계는 대북정책의 공조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 북한의 대(對)중국 의존도는 더욱 증가하고 있어 중화경제권으로 편입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국과 중국이 좀더 리더십을 발휘해 북핵 문제 등을 해결하고 한반도 안보 상황을 개선하길 바라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하지만 당분간 미국이나 중국이 현재의 대북정책을 바꿀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의 경우 ‘전략적 인내’ 정책이 최선은 아니라 하더라도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적고 중국 역시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안정을 우선시하는 현 정책을 바꿀 이유가 없다.
결국 한국이 나서야 한다. 한반도가 긴장 관계에 있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것은 미국도 중국도 아닌 한국이다. 또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좀더 리더십을 발휘해 주길 바라는 국제여론도 높다. 한국인인 반기문 씨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있고 한국계 미국인인 김용 씨가 세계은행 총재로 있는 등 국제사회에서 커진 한국인의 위상과 역량도 활용할 수 있다. 유엔이나 세계은행만 해도 북한과의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지만 현 상황에서는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 하지만 한국이 나서서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미국뿐 아니라 유엔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도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많다.
열흘 전 북한의 최고위급 3명이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참석차 남한을 방문했다. 이들의 방문 이유와 성과 등에 대해선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최근 벌어진 일련의 총격전으로 그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있기도 하지만 남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였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으로서도 경제발전을 꾀하고 과도한 대중국 의존도를 줄여야 하는 등 나름대로 남북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맞춤형 인게이지먼트’ 보고서에서 주장한 대로 안보 정치 상황에 맞는 대북 관여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때가 되었다. ‘인게이지먼트’란 단순한 포용이나 유화정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처럼 안보와 남북교류를 분리하는 것도, 이명박 정부에서처럼 남북교류와 관련해 핵문제에 고리를 거는 것도 적절치 않다. 그 대신 현재의 안보 상황에 맞는 단계별 ‘맞춤형’ 대북 교류 정책을 만들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안보 상황을 개선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구축하여야 한다.
브루킹스 세미나 다음 날 열린 미 정부관계자들과의 비공개 회의에서 한 북한 전문가가 ‘북한이 박근혜 정부를 포기한 것 같다’는 주장을 했지만 필자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최소 한두 번은 관계 개선을 위한 남북 간에 중요한 노력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소 무례한 북한의 ‘깜짝쇼’이긴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모처럼 만들어진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살려 차분하면서도 적극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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