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빈부격차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크다는 것은 중앙정보국(CIA)이 내놓은 2011년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대표적인 불평등 측정 지수인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각국을 비교해 본 결과 미국은 조사 대상 141개국 중 소득 평등 부분에서 최하위 그룹인 101위를 차지했다. 러시아 가나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보다 뒤처졌으며 2010년 조사에서는 불평등이 극심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보다도 안 좋았다. 정작 핏대를 세워야 할 미국인들은 둔감하다. 이 점이 한국인들로서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사실 미국인 대부분은 자기 나라가 그렇게 소득이나 부에 있어서 불평등한지 모른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마이클 노턴 교수와 듀크대 심리학과 댄 에어리얼리 교수는 2011년 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미국인들은 극소수에게 부가 편중되고 있는지 모른다”라고 말한다. 이들 연구의 피험자 중 90% 이상은 미국 상위 20% 사람들이 부의 60%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현실은 상위 20%가 85%의 부를 차지하고 있다. 또 대부분 응답자들은 하위 40% 사람들이 전체 미국 내 부의 8∼10%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답했는데 실제로 이들이 가진 부는 0.3%에 불과하다. 왜 그들은 현실에 무지 혹은 둔감한 것일까?
우선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적 습속이 작동한다고 보여진다. 바로 ‘(소득) 불평등에 관대한 문화(cultural tolerance for income inequality)’이다. 로이터통신 기자인 크리스티아 프리랜드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19세기 초 토크빌이 썼던 ‘미국식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라는 표현을 쓰며 “미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과 달리 부자들에 대해 엉뚱하게도(?) 호의를 갖고 있다”며 “가진 자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욕을 하기는커녕 부러워하고 존중하기까지 한다”고 했다. 이런 정서는 극소수 부자들에게 중과세 하는 것을 꺼리는 공감대로까지 이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이런 정신의 밑바탕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암묵적 계산이 깔려 있다. 부자들을 증오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선망의 대상으로 삼으면 지금은 볼품없는 자신도 언젠가는 “부자가 될 수 있다(soon to be rich)”는 생각이다.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고 ‘자수성가의 꿈’이다. 아무리 불평등이 깊어지고 있다 해도 미국인들 사이에 뿌리박힌 아메리칸 드림은 부자들을 괴롭힐 정책들을 기꺼이 주창 내지는 찬동하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오아시스의 신기루가 손에 잡힐 듯 앞에 보이는데 거리 감각은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자신도 부자가 될 것이라는 상상에 사로잡힌 이상 현재의 불평등에 대한 감각은 무뎌지기 마련인 것이다.
미국인들의 개인주의도 큰 몫을 한다. “부자는 부자고 나는 나다”라는 생각이다. 여기에는 땅 덩어리가 넓은 것도 큰 원인이라 생각된다. 다른 사람 삶을 유리알처럼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그들은 부자들의 삶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고 가까이 가 볼 수도 없다. 나와 남을 철저하게 떼어 놓고 생각하는 개인주의는 “부자들은 부자가 될 만해서 부자가 된 것이고 나의 가난은 순전히 내 탓”이라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미국 생활을 하다 보면 이 나라 사람들이 대체로 세상일에 관심이 없고 어둡다는 점을 알게 된다. 일상에 여유가 없어 그런 것이기도 하겠지만 미국인들의 뉴스 시청률이나 신문 구독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현격히 떨어진다. 특히나 불평등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이 세상사에 더더욱 어두우니 불평등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불평등에 관대한 문화는 원래 미국 건국 이념에 맞는 것은 아니었다. 평등한 나라의 건설이야말로 건국자들의 이념이었고 실제로 건국 초기 미국은 세계에서 보기 드문 평등한 국가였다. 캘리포니아대 경제학과 피터 린더트 교수와 하버드대 경제학과 제프리 윌리엄슨 교수는 2012년 미 경제연구소(NBER)에 발표한 논문에서 독립전쟁 발발 전인 1774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당시 미국의 13개 주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더 평등한 국가였음을 지니계수를 통해 보여준다. 노예제도를 가지고 있을 때였는데도 말이다. 두 사람의 논문에는 1774년과 남북전쟁 직전인 1860년, 2010년 상위 1% 부자와 10% 부자들의 소득 점유율 비교가 나오는데 건국 초기 상위 1%는 전체 소득에서 약 7%를 차지했지만 2010년에는 약 20%나 되는 식으로 차이가 벌어진다.
미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은 1814년 영국에 있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우리(미국)에겐 극빈자가 없다”라고 썼을 정도로 미국 사회는 고루고루 잘사는 평등한 나라였다. 하지만 현대를 살고 있는 불평등 연구의 대가들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이매뉴얼 사에즈와 런던정경대의 가브리엘 쥐크망 교수는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미국인들의 통념은 망상”이라고 일갈하면서 “미국에서 부와 빈곤의 대물림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착되었으며, 이제 계층 간 사회 이동은 어림도 없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이 걱정하는 ‘극소수를 위한 고장 난 자본주의 미국’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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