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산삼 한 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6일 03시 00분


지난 주말에 전남 화순에 다녀왔다. 그곳에 사는 남편 친구는 요즘 산삼 캐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근무를 마치고 금요일 밤에 심마니 수준인 지인과 함께 강원도로 떠나면 2박 3일을 산속에 머물다가 돌아오곤 한다는 것. 허탕 칠 때가 많지만 그렇더라도 산삼여행이 가져다주는 효능(?)이 아주 크다고 했다.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산에서 지내는 것 자체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거든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그래서 길도 나지 않은 깊은 산속을 헤매다가 날이 저물면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데 산에서 자는 잠이 도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아내는 “산은 찾아온 사람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했다. 산삼이 아니어도 버섯도 있고 밤이나 도토리를 줍기도 하고 나물이나 약초를 캐기도 하는 등 늘 품이 넉넉하다는 것.

“그러나 그런 것 없어도 산의 기운을 받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그렇게 말하는 부부의 맑은 얼굴을 보면서 우유를 먹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듯이 산삼을 사 먹는 사람보다 산삼을 캐기 위하여 종일 산행을 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리라는 것을 실감했다. 운동이 보약이니 말이다.

그분은 처음 산삼을 캤을 때의 감동과 3년간 다녀 보니 산삼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는지 대강 알겠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저장고에 잘 보관해 둔 산삼주 한 병을 꺼내 왔다. 잎사귀부터 뿌리까지 고스란히 산삼 하나가 담긴 술병을 ‘기념할 만한 귀한 날에 마시라’고 선물로 주었다. 작년에 강원도 양구에서 채취한 것이라고 했다.

40년 전 같은 과 친구로 만났다는 두 사람. 등록금 내기도 빠듯하던 고학생들이라서 자취방에 쌀과 연탄이 떨어지기 일쑤였지만 서로 의지하며 꿈을 키워 오늘에 이른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겹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둘이 자취하던 시절에 찍은 사진을 보니 소년의 티를 막 벗은 애송이 청년이다. 산삼을 먹은들 이제 그 시절 스무 살 청년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귀한 것을 선뜻 나눠 주는 오랜 우정이 있으니 나이 먹은 게 안타깝지만은 않다.

“심봤다!!!”

화순에서 돌아오는 길에 산삼주를 보며 장난스럽게 외쳤더니 남편은 마시기도 전에 벌써 취했냐며 웃었다. 맞다. 취했다. 열심히 살아온 두 사람의 우정에 취하고 곱게 물들어가는 우리의 인생에 취했다. 어디 술에만 취하라는 법이 있는가.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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