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이 갑자기 정전이 되고 컴퓨터가 모두 꺼지니 금방 전기가 다시 들어오려나 얼마쯤은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생님들이 하나둘 일어서더니 서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더러는 손발 움직이며 맨손체조도 하고 그러고는 미안한 듯이 컴퓨터 때문에 대화가 많이 없어졌다는 말을 합니다
칸막이 된 책상에 앉아 불 나간 컴퓨터 회색 화면을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문득 가슴이 밀물지듯 먹먹해져 옵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이십오 년 만에 만난 제자는 만나자마자 제게 맞은 따귀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반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따귀를 때리고 선생님이 오히려 울먹거렸다던 그 따귀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그 따귀 때문에 자신 살아났다던 얘기를 했습니다 깡패 양아치로 결국은 퇴학을 맞았던 그 녀석이 철학박사가 되어 저를 찾아왔었습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따귀도 그립고 주전자로 넘치게 따라 붓던 막걸리도 그립습니다 몸으로 부딪치며 울던 일이 그립습니다 그렇게 정전은 길어지고 침묵 또한 길어지면서 이상하게 창밖은 더욱 밝아집니다 화단 키 작은 벚나무 붉은 낙엽 떨어지는 것이 슬로우 비디오로 길게 눈에 걸립니다
교무실 여기저기 켜 있던 컴퓨터들이 일제히 전기 빠져 나가는 소리를 내며 꺼졌을 테다. 컴퓨터와 합체돼 있던 선생님들은 일순, 자신이 스르륵 꺼지는 느낌이 들었을 테다. 천장의 형광등도 꺼지고, 자연광에 익숙하지 않은 이 실내인(室內人)들은 유리창에서 비쳐 들어오는 햇살 속에서 문득 침침해진 듯한 눈을 끔뻑거렸을 테다. 현대문명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기가 공기처럼 필수로 여겨진다. 그래서 불시에 전기가 멈추자 시간도 멈추는 듯하지만, 멈춘 건 전기의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생님들이/하나둘 일어서더니/서로에게 다가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비로소 옆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실감되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꽃인 컴퓨터는 전 세계인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바로 옆 사람을 그림자로 만든다. 최근에 읽은, 해외로 배낭여행을 간 젊은이의 글이 생각난다. 전에는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이 한 숙소에 묵으며 짧은 시간이나마 우정을 나눴는데, 이제는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제 고국의 친구와만 대화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고국의 친구에게 이국 우표를 붙인 엽서 한 장 보내지 않으리라. 전기가 지금처럼 풍부하지도 않고 컴퓨터도 없던,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몸으로 부딪치며’ 살던 옛날이 화자는 가슴 먹먹해지도록 그립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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