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과 회담하고 뒤통수 맞는 일, 더는 안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18일 03시 00분


북한이 15일 남북 군사당국자 간 접촉의 전말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했다. 회담 내용을 발표하려면 당사자 간 합의를 거치는 것이 국제관례다. 북은 일방적으로 공개해 우리 정부를 난처한 지경에 빠뜨리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북은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문제를 논의한 올해 7월 남북 실무 접촉이 결렬됐을 때도 우리 측이 제기한 내용을 갑자기 공개하며 책임을 떠넘겼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 남북이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진행했던 비밀 접촉 내용을 북한 국방위원회가 2011년 6월 공개했던 일을 상기시킨다. 우리 정부는 북이 언제든 그럴 수 있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또 뒤통수를 맞았다.

북은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명의로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에게 긴급 접촉을 제안할 때부터 우리를 얕잡아 봤다. 북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남북 간 교전이 벌어진 사태의 수습 문제를 논의하자면서 황병서의 특사로 김영철 정찰총국장을 내세웠다. 격(格)이 안 맞을뿐더러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을 보내 NLL 무력화 도발을 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우리 측이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을 대표로 내보낸 것은 적절했으나 접촉 당일인 15일에도 북의 요청이라며 접촉에 대해 함구한 것은 잘못이다. 정부의 비밀주의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북은 때를 놓칠세라 남한이 비공개를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정부는 뒤늦게 비공개를 고수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부터 투명하게 대화를 추진했더라면 ‘진실 공방’에 휘말릴 일은 없었다.

2007년 10·4 공동선언이 NLL 무력화 논란을 낳은 것도 당시 남북 정상회담이 투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30일로 예정된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연연해할 필요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남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더라도 왜 그렇게 됐는지 투명하게 숨김없이 국민에게 설명하면 된다”는 취지로 발언했던 것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정부가 당당하게 나가야 북이 남남갈등을 노리는 꼼수를 쓰지 못한다.
#북한#군사당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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