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가 등장할 때는 태극기가 주인공이었다. 18일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장애인아시아경기 개막식. 아리랑 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군 의장대 소속의 기수들은 태극 문양이 그려진 개량 한복을 입고 보무당당하게 태극기를 운반했다. 새삼 태극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지난달 비장애인 아시아경기 개막식은 달랐다. 당시 기수단은 영화배우 현빈, 골프 선수 박세리, 발레리나 강수진, 아덴 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 육상 3관왕 출신의 임춘애 씨 등이었다. 의미 있는 인물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긴 했지만 국제대회에서 개최국 국기가 갖는 의미는 호화 기수단에 가렸다.
이날 각국 선수단은 여느 대회와 달리 일찌감치 입장했다. 박칼린 개·폐막식 총감독은 “내가 선수라면 개막식을 보고 싶을 것”이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선수들을 위한 배려였다. 개막식의 슬로건은 ‘불가능이 우리를 이끈다(Impossible Drives Us)’였다. 사고, 질병, 재난 등 많은 이유로 생긴 신체의 한계를 인간은 창의성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행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 주제를 놓치지 않았다. 여러 분야에서 장애인을 위해 일한 사람들과 그들이 만든 창의력의 산물이 등장했다. 점자, 의수, 의족, 휠체어, 수화…. 공연 참가자들은 온몸으로 이를 표현했고 선수들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박 총감독은 개최 도시인 인천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현장에서 장애인과 조력자들을 소개한 여성 진행자는 오디션을 통해 뽑은 인천 시민이었다. 왜 인천이 장애인 아시아경기를 개최했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하게 해준 시간이었다.
장애인과 조력자들이 입장을 마친 뒤 노래가 흘러 나왔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 줄게….” 가수 김태우가 부른 ‘촛불 하나’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이렇게 명확하게 보여주는 가사가 또 있을까 싶었다. 성화 봉송과 점화도 장애인과 조력자들이 맡았다. 최종 점화자는 2009년 런던 세계 장애인수영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차지했던 김세진과 그를 생후 5개월 때 입양해 눈물로 키운 어머니 양정숙 씨였다.
비장애인 대회 개막식은 연예인들의 잔치였다. 한류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고 성화 점화자도 배우 이영애였다. 당시 개막식을 연출한 임권택 감독은 “적은 예산으로 차별화시킬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했지만 언론은 “본말이 전도된 행사”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 비해 적다고는 해도 비장애인 대회 개막식에 들어간 돈은 200억 원이 넘었다. 이번 대회 개막식 예산은 40억 원이다. 물론 비장애인과 장애인 대회는 규모 자체가 다르다. 어떤 이들에게는 비장애인 대회 개막식이 훨씬 화려하고 재미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막식은 적은 비용으로 대회의 의미를 훌륭하게 보여줬다.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주제 파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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