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가을, 가족 모두 강원도 산골로 들어온 이후 필자와 아내는 이따금 스스로를 노비와 하녀로 비하하곤 한다. 사실 시골생활을 직접 해보면 농사 등 바깥일을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남편은 물론이고 집안일에 농사일까지 거들어야 하는 아내 또한 육체적으로 고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도 신세타령이 이어지면 아내가 먼저 슬그머니 물러서준다.
이웃 동네에 사는 한 어르신 부부의 ‘황혼이혼 에피소드’도 재미있다. 할머니가 일방적으로 황혼이혼 운운했는데, 지난해 겨울 화목겸용보일러를 설치한 이후 이 얘기가 쏙 들어갔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직접 땔나무를 해와 뜨끈뜨끈하게 방을 데워 주고, 할머니가 아픈 기색을 보이면 즉시 병원으로 데려간다. 폭설이 내리는 한겨울 제설작업도 물론 할아버지의 몫이다. 이 역시 시골생활에 있어서 남자의 역할을 보여주는 실례다.
특히나 시골로 들어온 지 1∼2년밖에 안 된 시골생활 초보 아내들은 땅과 집, 그리고 소득 등 경제적인 기반이 어느 정도 받쳐준다고 해도 남편 없는 전원생활에 대해서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2013년 가을 전원주택을 지어 ‘4도3촌(4일은 도시에서, 3일은 농촌에서)’ 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아예 시골로 이사한 B 씨(53)는 “시골생활은 늘 육체노동을 필요로 하는데, 남편 없이 여자 혼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산골생활 2년 차인 Y 씨(44)는 “만약 혼자 남게 된다면 다시 도시로 가겠다”고 했다. 심지어 시골에 정착한 지 14년이나 된 L 씨(39)조차도 “여자 혼자의 힘만으로 시골생활을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여자 혼자서 시골생활을 하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실제 주변에서 보면, 이미 그렇게 사는 이들도 드물지만 있다. 때론 이웃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농사도 짓고 다른 일도 하면서 안분지족하며 자립적으로 산다.
약 10년 전 남편의 요양을 위해 강원도 산골로 내려온 H 씨(64)는 몇 년 전 남편을 떠나보냈다. 이후 도시로 다시 돌아갈까, 아니면 시골에 계속 머무를까를 놓고 고심하다가 결국 전원을 택했다. 다니는 교회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농사를 지어 대부분을 자급하면서 건강한 노후를 보내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0여 년 전에 홀로 귀농해서 6611m²(약 2000평)에 달하는 농사를 홀로 짓는 여자 농사꾼도 있고, 도시에서의 전문성을 살려 초등학교 등에서 알바를 하며 귀촌생활을 즐기는 이도 있다. 이런 여성들의 특징은 이미 10년 안팎에 걸쳐 농촌에 살면서 잘 정착한 50대 중후반부터 60대 초중반이라는 점. 다만, 상대적으로 젊은 30, 40대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한편 고령의 원주민 가운데는 홀로 살아가는 여성(할머니)이 꽤 많다. 이들은 자그마한 텃밭을 가꾸며 먹을거리 대부분을 자급한다. 현금 소득이 거의 없지만 이전부터 안 쓰며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지라, 그들에게 시골의 삶은 어렵거나 힘든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근래 들어 예비 귀농·귀촌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나 상담을 하다 보면 불과 몇 년 전에 비해 전원생활에 대한 도시 거주 여성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30, 40대도 꽤 눈에 띈다. 2013년 귀농·귀촌 관련 통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지난해 귀농가구주의 여성 비율은 29.4%, 귀촌가구주의 여성 비율은 35.3%에 달했다. 여러 속사정이 있겠지만 생각보다 그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또 올 7월 말에 열린 ‘6차산업화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10개 농업경영체 가운데 여성 대표가 40%를 차지했다는 점도 향후 농촌에서의 여풍 현상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초기 적응기간(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만 잘 넘긴다면, 이후 여자 혼자서 시골생활을 하는 것이 비록 힘은 들겠지만 불가능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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