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남자와 대장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3일 03시 00분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1. 기자는 오늘 저녁에 취재원과 약속이 있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다. 하지만 친구가 “오늘 저녁에 남자 만나?”라고 물으면 뭐라 답해야 할까.

#2. 대장균은 열에 대한 저항성이 약해서 60도에서 약 20분간 가열하면 멸균된다. 대장균이 검출된 시리얼을 정상 시리얼과 섞은 후 가열해서 제품을 만들었을 때 안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남자에 대한 질문을 하자마자 대장균 얘기를 해서 놀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남자와 대장균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일단 대장균 얘기부터 하겠다. 국내 시리얼 시장에서 1위를 달리는 동서식품은 충북 진천공장에서 제조한 시리얼 완제품에서 대장균군(대장균과 비슷한 세균의 조합)을 자체적으로 발견했다. 하지만 이 시리얼을 폐기하기는커녕 포장을 뜯어 다시 가공하거나 정상 제품과 섞어 팔았다.

동서식품은 최근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동서식품은 “대장균군은 쌀을 포함한 농산물 원료에 일상적으로 존재한다”며 “(대장균군이 섞인 시리얼의) 양이 너무 많아 버리기에 아까웠다. 대장균은 식중독균과 달리 가열하면 살균이 되어 재검사에서 문제가 되지 않으면 판매했다”고 했다.

고객들은 분노했다. 음식과 대장균의 조합이라니….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대장균을 먹어도 괜찮다는 말인가. 논란이 커지자 동서식품은 사과문을 내걸었다.

“동서식품은 시리얼 제품 관련 언론 보도로 그간 저희 제품을 애용해주신 고객 여러분께 심려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진정성이 부족했다. 엄밀히 살펴보자. 대장균 시리얼 사건에 대한 고객들의 심려가 과연 언론 보도 때문이었던가. 비(非)정상적인 행위를 먼저 인정하고 이를 밝히는 게 순서가 아니었을까. 책임 있는 회사 측 인사의 사과도 없었다.

고객들의 이런 정서와 달리 ‘대장균 시리얼 사건’은 ‘솜방망이 처벌’로 일단락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1일 “동서식품의 시리얼 총 139건을 검사한 결과 모든 제품에서 대장균군이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동서식품은 자가 검사 결과를 보건당국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과태료 300만 원만 물면 된다.

다시 기자의 오늘 저녁 약속 문제로 돌아가 보자. 기자가 저녁에 만나는 사람이 남자인 것은 맞지만, 남자를 만나느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애매하다. 상식적으로는 남자보다는 ‘남자인 사람’이 맞다.

대장균 시리얼은 동서식품의 당초 해명대로 사실상 안전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대장균 시리얼을 먹어도 안전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음식은 사람이 먹는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철학에 문제가 있는데, 세상 사람들의 공분에 교감을 못하는데, 어떻게 믿고 먹을 수 있겠는가. 상식적으로 그렇다. 대장균 시리얼의 뒷맛은 그래서 개운치 않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동서식품#대장균#시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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