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초청으로 어제 청와대를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방북 승인을 요청했다. 박 대통령이 “여사님께서 통일에 관심이 많으시고, 북한 아이들 걱정하면서 직접 털모자와 목도리도 짜시고 준비하신다고 들었다”고 말을 꺼내자 이 여사가 “그래서 북한을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는데 대통령께서 허락해 줬으면 좋겠다”고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 것이다. 이에 박 대통령이 “언제 한번 여사님 편하실 때 기회를 보겠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해 이 여사의 방북 승인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이 여사 초청은 26일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 서거 35주기에 이 여사가 처음으로 추모 화환을 보내준 데 대한 답례의 성격이었다. 이 여사는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추모 화환 보내는 문제를 상의했다고 한다. 박 의원은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5주기를 앞두고 북측의 화환을 받아오기 위해 개성공단을 찾은 바 있다. 그 뒤 박 의원이 “이희호 여사를 초청해 달라고 북측에 말했다”고 밝힌 것으로 볼 때 이 여사의 방북 승인 요청이 우연히 나왔다고 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올 3월 ‘드레스덴 통일 구상’에서 북한의 산모와 유아에게 영양과 보건을 지원하는 모자 패키지 정책을 제안했다. 여러 차례 방북 희망을 밝혔던 이 여사가 어린이용 털모자를 전달한다면 경색된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0년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때와 2011년 김정일 조문 때 방북했던 이 여사는 남측 인사로는 처음으로 김정은을 만났던 사람이다. 이 여사가 방북할 경우 김정은과 면담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이 여사를 비공식 특사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 여사 주변의 얼치기 평화론자들이나 좌파 세력이 행여 이 여사의 방북을 남남갈등의 소재로 활용하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이 여사는 조의록에 ‘김 국방위원장께서 영면하셨지만 6·15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이어 하루속히 민족통일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쓴 바 있다. 6·15공동선언에 대해 북은 “고려연방제 통일을 위한 장전(章典)이며 김정일 장군님의 현명한 영도로 이룩한 위대한 업적”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천 남북고위급회담 이후 정부가 북과의 대화에 너무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남북 모두 이 여사의 방북 문제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