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엄마의 행복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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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영국에서 키운 엄마가 있다. 그녀는 오로지 아들 교육만을 위하여 오랫동안 남편과 떨어져 살면서 아들에게만 집중했는데 그 덕에 아들은 세계적인 명문대에 합격했다, 아들이 대학 기숙사로 들어가자 비로소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자랑스럽던 아들에게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아들이 엄마의 성에 차지 않는 여자랑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녀는 속이 상해서 여러 번 내게 하소연을 했는데, 결국에는 아들 말이 이러했다고 한다. “엄마, 이제 엄마도 행복하게 사세요. 저는 유산 필요 없으니까 엄마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가고 싶은 데 다 다니시고요. 저를 위해 희생 같은 거 하지 마시고 대신 제 일에 개입하지 말아주세요.”

충격을 받은 그 엄마에게 “아들을 잘 키우셨네요”라고 칭찬했더니 나의 진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쳐다본다. 부모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는 것보다 사랑과 독립을 택하는 젊은이라면 이제부터는 아들 걱정하지 않고 맘 놓고 행복하게 살아도 되겠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석연치 않은 표정을 버리지 못했다.

한 엄마는 알콩달콩 지내던 외동딸이 유학을 가자마자 너무 잘 지내니까 기분이 묘하다고 했다. 물론 딸이 외국생활에 적응을 잘해서 다행이지만 엄마 없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이 내심 섭섭하다는 것. 그래서 명랑하게 전화하는 딸에게 “그래, 엄마 없이도 즐겁고 행복하다니 됐다. 내 몫까지 즐겁게 지내라”고 했더니 영문 모르는 딸이 “아냐 엄마, 난 내 몫만 즐거울 테니까 엄마도 엄마 몫으로 즐겁게 사세요”라고 하더란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엄마들이 자기 몫을 잃어버렸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 자녀의 몫에 자꾸 개입하게 된다. 그것이 설사 사랑일지라도, 아니 사랑이기 때문에 자녀는 부담스럽다. 나의 경우 아직도 나를 가슴 저리게 하는 것은 엄마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너무 넘쳤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엄마는 큰 그릇에 밥을 썩썩 비벼서 같이 먹는 걸 좋아했는데, 나는 항상 내 몫을 따로 담아서 먹었다. 모든 게 그런 식이어서 엄마가 섭섭해하셨지만 적극적인 성격인 엄마로부터 분리되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엄마의 소박한 바람을 거부했던 일들이 실은 두고두고 마음에 걸린다. 자녀가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사는 걸 원치 않는다면 엄마도 엄마 몫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엄마의 행복이 자녀를 자유롭게 한다.

윤세영 수필가
#명문대#유학#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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