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등산길 따라 꿈틀꿈틀 몸 옮기는 뱀은 차디찬 골짜기 돌무덤을 찾아들 터, 그조차도 여의치 못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얘야, 겁먹지 마라 원래 이 길은 뱀의 길이 아니란다 겨울이 두려운 뱀을 위해 먼저 놀라지 말고 갈 길 내주어야 한단다 불안한 눈빛으로 떨고 있잖니? 불쌍하지 않니?
나조차도 무서워서 돌아가는 거기, 잠시 인적 끊기고 저만치 사라질 동안 길은 먼 데 풍경처럼 까마득하다
뺨에 스치는 바람이 싸늘하고 마른 억새풀 서걱인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며 산길을 걷는데 불쑥, 초록빛 작은 뱀 한 마리! ‘좁은 등산길 따라/꿈틀꿈틀 몸 옮기는 뱀.’ 다들 비명을 지르며 우뚝 발을 멈췄을 테다. 하지만 얼마나 작은 뱀인가. 어린애라도 그 뱀보다 백배는 크고 강하다. 그렇잖아도 추워진 날씨에 어찌할 바 모르고 혼자 헤매던 차에 갑자기 무시무시한 생명체들이 나타났으니 뱀이야말로 기겁을 할 일이다. 화자도 뱀이 무섭지만, 어른답게 생각하고 처신한다. 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만 보여도 무섭다고 호들갑을 떠는 아가씨를 보면 짜증이 치밀어 “당신이 더 무서워!” 쏘아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가 고양이 공포증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른이 가만히 있는 작은 동물을 무서워하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는 것이 이만저만 덜떨어져 보이는 게 아니다.
‘불안한 눈빛으로 떨고 있지 않니?/불쌍하지 않니?’ 무서움보다 강한 연민을 가르치며 화자는 아이를 다독인다. 뱀이 ‘저만치 사라질 동안/길은/먼 데 풍경처럼 까마득하다’. 아이와 함께 잠시, 까마득히 펼쳐지는 다른 생명체들의 세계를 지켜보는 화자다.
인터넷에서 매우 사랑스러운 새끼 늑대 사진을 봤다. 그 사진에는 이런 문구가 딸려 있다. ‘당신의 엄마는 오늘 새 코트를 얻었나요? 나는 엄마를 잃었습니다.’ 다른 동물들에게 인간은 ‘진격의 거인’처럼 무한공포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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