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하면 풍차와 튤립 말고도 떠오르는 게 많다. 제방 구멍을 온몸으로 막아내 나라를 구했다는 동화 속 아이부터 철학자 에라스뮈스, 화가 렘브란트와 반 고흐를 거쳐 안네 프랑크, 헤이네컨(하이네켄) 맥주까지. 우리 역사에도 조선시대 박연이라 불린 벨테브레이와 하멜이 있었다. 둘 다 대양을 떠돌다가 표류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der fliegende Holl¨ander)’이었다.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히딩크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얀 뤼프 오헤르너 씨도 우리에겐 기억해둘 네덜란드인이다. 그는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에서 태어났으나 그곳을 침략한 일본군에 의해 20세의 꽃다운 나이에 위안부 수용소에 끌려갔다. 2007년 미국 의회 사상 처음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에게 첫 경험이 갖는 의미는 큽니다. 그 첫 경험이 성폭행, 그것도 군위안소에서의…. 내 인생에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일본을 방문 중인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아키히토 일왕 앞에서 “우리 민간인과 병사가 포로로 노동을 강제당하고 자부심에 상처받은 기억이 여러 사람의 생활에 상흔으로 남아 있다”며 두 나라는 자랑스러운 역사도, 아픈 역사도 모두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가한 고통을 언급한 것이다. 그중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이 오헤르너 씨 같은 여성일 것이다.
▷400년 전 일본에 근대 문명을 전해준 네덜란드는 일본인에게 최초의 서양인 교사나 다름없다. 네덜란드 국왕의 발언은 아픈 과거는 없었던 것으로 묻어버리지 말고 정면으로 응시하고 기억할 때 넘어설 수 있다는 의미다. 안네 프랑크는 정확히는 네덜란드인이 아니다. 독일에서 박해를 피해 넘어왔으나 결국 나치에 잡혀 희생된 유대인 가족의 딸이었다. 나치에 유화적이었던 네덜란드는 이 일을 큰 수치로 여긴다. 수치를 아는 네덜란드가 수치를 모르는 일본에 한 훈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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