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331>봄바람이 달려와 내 눈물을 말려주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5일 03시 00분


     
봄바람이 달려와 내 눈물을 말려주니
―신현수(1959∼)     

점심시간에
밥 빨리 먹으라고 성화를 부린 후
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학교 앞 야산에 오른다.
핑계는 등산하면서 상담하기지만
실은 내가 더 가고 싶었다.
아이들은 계단 몇 개밖에 안 올랐으면서
힘들다고, 너무 가파르다고, 목마르다고
지랄발광을 하지만
말만 그렇게 하고는
나를 떼어놓고
지들끼리만
저만치 앞서서 뛰어 올라간다.
등산로 옆 개나리는 아이들과 함께 떠들고
솔숲 사이 진달래는
뭐가 부끄러운지
몰래 숨어 있다.
산꼭대기 전봇대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진 사람이 노래를 하기로 했다.
가위 바위 보에서 진 놈이 뜬금없이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멋지게 부른다, 4월인데.
뜬금없이 눈물이 찔끔 흐른다.
아이들에게 그런 노래를 가르쳐 준 중학교 음악선생이 고맙다.
봄바람이 달려와 내 눈물을 말려 주니
조금, 행복하다.
화자는 남자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일 테다. 반 아이들을 대강 파악한 4월 어느 볕 좋은 날, ‘밥 빨리 먹으라고 성화를 부린 후/아이들 몇 명을 데리고 학교 앞 야산에 오른’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이 ‘힘들다고, 너무 가파르다고, 목마르다고/지랄발광을’ 한다는 표현에서 화자의 애정이 배어난다. 화자는 한 달여 짧은 기간에 팔팔한 남학생들이 스스럼없이 대하게 될 만큼 신뢰를 얻은 선생님인가 보다. 아이들은 마지못해 따라나섰지만, 모처럼 야외에서 바람을 쐬며 봄기운을 만끽한다. 화자 역시 간절했던 봄기운. 잠깐 틈을 낸 소풍에도 노래가 빠질 수 없다. 이제 막 변성기가 지났거나 변성기 직전인 소년의 목소리는 애달프도록 청순하다. 그 목소리로 음악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는 노래를 멋지게 부르는 소년. 화자는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흐른다’. 마음 여리고 감수성 풍부한 선생님이다. ‘봄바람이 달려와 내 눈물을 말려 주니/조금, 행복하다’니 화자는 조금 행복하지 않았나 보다. 시인의 다른 시 ‘밥벌이의 지겹지 않음’이 떠오른다. ‘나이 든다는 것은/밥벌이의 엄정함을 깨닫는 것/아이들과 씨름하는 것은 자아실현이 아니라/실은 밥벌이였다는 걸 깨달으니/이제 대체로 모든 게 견딜만하다’…. 사제지간에 공부와 성적에 대해서만 대화를 하게 되는 현실은 학생뿐 아니라 교사의 행복지수도 떨어뜨린다. 밥벌이를 자아실현과 더불어 한다는 교육자로서의 자긍심을 찾을 길 없을 테다. 시 속의 시간을 소년들도 아름다운 스냅으로 간직하리라.

황인숙 시인
#봄바람#눈물#황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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