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작은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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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물든 나뭇잎이 바람에 흩날리는 지난 일요일에 목동성당을 찾아갔다. 지인이 사목회장으로 있는 강원 속초 청호동성당의 루도비코 신부님이 오셔서 특별강론을 한다고 해서였다. 그 신부님의 강론을 듣다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나는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열여섯에 시집 온 어머니는 아들 넷과 외동딸을 신부와 수녀로 키우셨다고 한다. 4형제 신부 가운데 막내인 그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고 임지로 떠나는 날 어머니는 작은 보따리를 주면서 “힘들 때 풀어보라”고 하셨다. 그러나 신부님은 성당에 도착한 첫날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보따리를 풀어보았다. 그 속에는 배냇저고리와 함께 무학(無學)인 어머니가 삐뚤빼뚤하게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막내 신부님, 신부님은 원래 이렇게 작은 사람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나서였다. 아, 맞다. 우린 원래 손수건만 한 배냇저고리가 몸에 맞는 작은 아기였다. 엄마의 정성으로 몸집 큰 어른이 되었고, 지식과 지위를 가졌고, 이거 저거 소유하게 되었지만 원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손이었다. 그런데 어른이 된 지금, 부족한 게 많아서 때때로 얼마나 외롭고 괴로운가. 더 많이 알고, 더 소유하고, 더 누리고 싶어서 말이다.

배냇저고리를 입은 나를 상상하니 배시시 미소가 떠오른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작은 아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니 마음이 편안하고 부드러워진다. 신부님의 어머니가 왜 힘들 때 보따리를 풀어보라고 하셨는지 알 것 같다. 처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일 때는 비록 미미하고 서툴러도 기쁘고 설�다. 첫 입학, 첫사랑, 첫 직장, 처음 장만한 집, 첫아이, 처음 출간된 내 책…가만히 생각해보니 처음의 기쁨은 너무나 많았고 그래서 두근거리고 행복한 시간도 참 많았다. 그런데 원래 작은 아기였다는 걸 잊어버리고 살아온 것처럼 그런 좋은 기억들을 잊고 지냈다. 바보같이 기쁨은 빨리 잊고 괴로움은 오래 간직한 것이다. 반대로 했어야 하는데 말이다.

깨달음 하나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수수 나뭇잎을 놓아버리는 가로수들이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늦가을 나무처럼 그렇게 내게도 아직 놓아야 할 것들이 많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윤세영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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