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그 붉은 산수유 열매//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서늘한 감각으로 그 옛날 문학청년들 가슴에 뜨거운 선망과 감탄을 불러일으킨 ‘성탄제’의 시인 김종길. 미수(米壽)에 이르신 선생이 시 전문지 ‘유심’에 최근 발표한 작품이다.
황락(黃落)은 한 해의 성장을 마친 식물이 누렇게 물든 잎을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가을이 깊어져 황락의 풍경을 보이는 뜰을 둘러보다가 문득 ‘나 자신이 바로/황락의 처지에/놓여 있질 않은가!’, 새삼 깨닫는 화자다. 이제 곧 겨울이 오겠지. ‘내 뜰엔 눈 내리고/얼음이’ 얼겠지. 그래도 뜰엔 다시 봄이 오련만, 인생의 봄은 다시 오지 않아라. ‘내 머리에 얹힌 흰 눈은/녹지도 않고, 다시 맞을/봄도 없는 것을’…. 선생이 이 시의 시작노트에서 밝혔듯 ‘인생의 일회성이 인생 황락기의 애수의 근원’일 테다. 하지만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에 더욱 소중한 나날들이다. 봄도 한 번이지만 가을도 한 번, 겨울도 한 번이다! 계절은 저마다 아름답다. 쓸쓸하게, 그러나 거칠지 않게 맞이하는 시인의 황락의 계절.
선생님, 몇 해 전 얼핏 뵌 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숱지시더군요. 제 주위에는 ‘흰머리라도 많이만 있었으면 좋겠네!’ 하는 친구가 한둘이 아니랍니다. 건강과 건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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