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유영]최고의 호사를 누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한 대기업 오너의 얘기다. 그는 전담 농부를 두고 자신이 먹을 농산물을 지방의 농장에서 유기농으로 기른다. 작물을 매주 1, 2차례 서울의 자택으로 배달시킨다. 엉터리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이 속출하고 원산지를 알 수 없는 작물이 적지 않은 세상에서 ‘믿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스스로 조달한다는 취지다.

‘21세기 최고의 럭셔리 산업’은 농업이라더니…. 좋은 음식을 먹고 무병장수하고 싶은 건 인류의 꿈인 만큼 부(富)를 이렇게 쓰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가 “향후 20년간 농업 분야는 최고의 투자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까지 감안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굳이 부자여야 이런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가 적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도시농부는 전국에 88만여 명(지난해 말 기준)에 이른다. 5, 6년 전만 해도 소일거리로 농사짓는 어르신이 주류였다면 최근에는 젊은이들이 가세하는 등 다양한 층으로 확산된 게 특징이다.

매주 목요일이면 20, 30대 ‘독거청년’들이 서울 홍익대 인근의 한 텃밭에 모인다. 텃밭 채소로 저녁을 함께 지어 먹기 위해서다. 이들은 건물 옥상 바닥을 밭으로 만들어 갖가지 작물을 키운다. 또 서울시내에는 요리사가 직접 키운 작물을 식재료로 쓰는 레스토랑이 생겨났다. 대기업도 도시농업에 뛰어들었다. 현대카드는 서울 영등포구 본사 옥상에서 기른 채소를 구내식당에서 쓴다. “직원들에게 좋은 채소를 먹이고 싶은 마음”이라고 한다. 구닥다리 취급을 받던 농사가 트렌드 세터들의 취미가 되는 순간이다.

도시농부들에게 농사는 식품 조달 수단 이상의 의미다. 작물을 보거나 만지고, 향을 맡으며, 물 주는 소리를 듣고, 먹기도 하고…. 오감(五感)으로 행복감을 맛본다. 또 농사를 통해 ‘작은 성취’를 경험하거나 자족감을 느끼면서 일상에서 겪는 좌절감이나 우울감을 떨칠 수 있다. 운동도 된다. 밭에서 30분간 물 주기는 60Cal, 땅고르기는 150Cal, 풀 뽑기는 175Cal를 소모시킨다. 농사가 ‘애그로힐링(agro-healing·농업과 치유의 합성어)’ 혹은 ‘애그로테인먼트(agro-tainment·농업과 즐김의 합성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도시농부는 증가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부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백악관에 ‘키친 가든’이라는 텃밭을 만들어 수확한 농산물을 백악관 식재료로 쓰거나 기부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최근 청와대에서 수확한 사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21세기 최고의 호사를 느끼는 법은 어렵지 않다. 부자나 대통령이 아니어도 된다. 심지어 땅이 없어도 된다. 작물이 심어진 ‘상자텃밭’을 보급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적지 않으니 일단 삽을 들고 상자 놓을 곳을 마련하면 된다. 베란다나 동네 공터에서 마음만은 ‘최고의 부자’가 되는 길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김유영 소비자경제부 기자 abc@donga.com
#호사#도시농부#독거청년#텃밭#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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