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한민국 의료는 우리 자신도 놀랄 정도로 발전해 이제 한국 의료를 통째로 수입하고 싶어 하는 국가들이 생겨날 정도까지 되었다.
많은 병원들이 이런 수요를 읽고 해외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서울대병원도 이런 대열에 참여하여 노력하던 중 ‘아랍에미리트 왕립 셰이크 칼리파 전문병원’을 위탁운영하게 되는 결실을 얻었다. 이는 의미 있는 성과다. UAE 대통령실은 이 병원에 5년간 약 1조 원의 운영예산을 지원하게 되며 국내 의료진 150명가량이 현지에 파견될 예정이다.
라스알카이마에 위치한 병원은 248개 병상 규모의 비영리 공공병원으로 암, 심장질환, 어린이질환, 응급의학, 재활의학, 신경계질환 등에 중점을 둔 3차 전문병원(지상 5층, 지하 1층)이다. 향후 5년 안에 의료진을 포함해 총 1500여 명의 직원이 상주하며 이 중 200여 명의 한국인이 모든 것을 책임지게 된다. 이미 60명이 파견되어 불철주야 개원을 준비하고 있다. 선형 가속기를 포함한 초고가 최첨단 장비도 도입된다.
이번 사업은 중동의 한 왕족 그룹이 아부다비 한복판에 23만8000여 m²(약 7만2000평)의 광활한 땅을 확보한 뒤 고가의 병원 건물과 시설을 완공해 놓고 경영과 운영과 진료를 총망라할 한국 의료시스템을 패키지로 수입하는 국가사업이다.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스탠퍼드대(미국), 킹스칼리지(영국), 샤리테병원(독일) 등 세계 굴지의 병원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결국 한국이 수주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중동의 몇몇 국가들이 서방의 최고 의료를 수입하겠다는 계획을 해 왔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많은 병원들이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필요한 우수 의료진을 파견하지 않고 현지 의료인을 중심으로 병원을 운영한 결과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고 그 결과 현지 국민들의 신뢰를 얻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이 눈길을 돌린 나라가 바로 한국이었다. 한두 사람의 입소문 또는 직간접으로 한국 의료를 경험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한국 의료를 수입하자는 여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 국내에는 병원산업의 해외 진출이야말로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효자 종목이 될 거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또 녹록지 않은 국내 여건에도 불구하고 몇몇 병원이 국제화에 눈을 떠 해외(중국, 중동, 동남아시아 등) 진출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진출을 시도했던 끈기도 한몫했다. 병원 수출은 대한민국의 차세대 성장동력 중 하나다. 그러므로 국가 차원에서의 협력과 팀플레이가 중요하다. 국내 항공사가 저비용으로 파견자들의 짐과 의료장비 등을 신속하게 공수하는 데 협조해주고 있는데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렵게 시작한 병원 수출 성공모델이 장기간 성공 모드로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다.
병원 수출 계약은 매우 복잡하다. 운용 수수료, 임직원의 고용 안정성, 비용의 책임 소재, 계약 관련 소송, 진료 관련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와 비용, 비밀유지 의무 등 세부사항들이 많다. 언어장벽 극복, 파견 직원과 가족의 복지와 교육, 날씨, 음식, 수송 편의, 거주지 의료사고 발생 시 법적·의료적 대처 방안, 파견자들의 건강관리 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정부는 법률자문, 회계자문, 시장조사 등에 있어 초기 지원을 담당해주어야 한다.
국가 간의 상호 면허 인정 과정과 불이익을 받을 소지를 제거하는 다양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외교부 해외 근무자들처럼 해외 취업 절차의 간소화와 세제 혜택을 통한 파견 장려 촉진도 지원의 중요한 항목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재정적인 이득의 일부라도 의료 공공성 증대에 쓰일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병원 진출은 외화벌이를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국격의 업그레이더(upgrader)’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이번 에볼라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를 위해 한국 의료진이 아프리카에 들어가게 된 것처럼 한국 의료는 이제 세계무대로 나가야 하고 또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그동안 한국 의료는 우수한 인적 기반하에 세계 의료계와 긴밀한 학술적 교류를 해왔고 현장에서 치료 능력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의료의 질과 서비스의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기 위해 세계 의료 평가 시스템에 합류하고 아울러 한국 의료의 특성을 반영한 한국형 평가 기준도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꼭 짚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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