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그 여인의 신비한 매력에 사로잡혔어요. 남성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아담하고 가냘픈 몸매, 잠깐 쉬었다가 자유롭게 날아가는 나비처럼 우아한 자태, 이런 에로틱하면서도 단아한 아름다움이 창조적 영감을 자극했어요. 이 덕분에 가부장적 남성 중심 시각에서 바라보았던 성녀-악녀, 현모양처-요부라는 이분법적인 여성관을 통합하는 작품을 수십 점이나 그릴 수 있었죠.”
이순종 작가가 말한 그림이란 조선 미인도의 백미로 꼽히는 신윤복의 ‘미인도’를 가리킨다. 이 색동문양 액자 속 여성의 얼굴을 보라. 신윤복의 ‘미인도’에 나오는 기생으로 추정되는 여성을 쏙 빼닮지 않았는가.
다른 점은 신윤복의 미인은 트레머리라고 불리는 가발을 얹어 머리를 단정하게 장식한 반면 이순종 버전의 미인은 머리카락을 풀어헤쳤다는 것.
왜 머리카락을 풀어헤쳤을까. 그리고 원형 나무액자를 선택해 전통적인 색동문양으로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풀어헤친 머리카락은 여성의 몸과 마음을 구속하던 억압의 역사에서 해방되고 싶은 갈망을, 원형 액자는 기독교미술의 성모 마리아 아이콘(예배용 성화)처럼 신성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색동문양은 기쁨과 복을 비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파울루 코엘류의 소설 ‘11분’에는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인용한 이시스 찬가가 실려 있다. “나는 최초의 여자이자 마지막 여자이니. 나는 경배받는 여자이자 멸시받는 여자이니, 나는 창녀이자 성녀이니. 나는 아내이자 동정녀이니, 나는 어머니이자 딸이니
나는 빛 가운데 분만하는 여자이자 결코 출산해본 적이 없는 여자이니
언제나 날 존중하라, 나는 추문을 일으키는 여자이자 더없이 멋진 여자이니.”
한국적인 에로티시즘과 아이콘화의 성스러움을 융합한 이순종표 미인도는 이시스 찬가를 그림으로 옮긴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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