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양 없는 미술담당 기자지만 한때는 미술관 가는 걸 꽤 좋아했다. 제대 후 첫 유럽 배낭여행 일정의 기준은 각 도시 미술관 야간개장일이었다.
지난달 영국 런던 출장 귀국 당일 짬을 내 15년 만에 내셔널갤러리를 찾았다. 한 작가에게 추천받은 별관 렘브란트 특별전은 낮은 안목 탓에 입장료가 아까웠다. 샌드위치로 허기를 누르며 공짜인 본관에 얼마쯤 머물 수 있을지 헤아렸다.
한가로운 전시실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 없지만 붐빌 때는 그림 한 귀퉁이 쪽에 비껴 붙어 선다. 대강 훑으며 지나는 이의 시야를 가리고 싶지 않고 정중앙에 설 틈을 노리는 뒷사람 눈치를 받고 싶지도 않아서다.
30분쯤 지나, 이제 시야를 신경 쓰는 것만으로는 미술관에서 온전한 몰입이 어려운 시대가 됐음을 알았다. 흥미를 끄는 부분에 멍하니 집중하려는 찰나마다 알람처럼 기계음이 울려왔다. 찰칵. 찰칵. 찰칵. 찰칵. 널리 알려진 작품일수록 빈번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셔터 소리.
타고난 몹쓸 예민함 탓이다. 언제 다시 마주할지 알 길 없는 그림 앞에서 나름의 이미지 기록을 남기는 행위가 어째서 거슬린단 말인가. 스스로의 수더분하지 못함을 자책하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해졌다. 맨눈이 아닌 스마트폰 액정화면으로 담아낸 회화작품의 기억은 페이스북 ‘좋아요’ 떡밥 외에 어떤 용도가 있을까. 셔터만 제꺼덕 누르고 지나간 아까 그 소녀는, 자주 본 그림인데 마침 과제제출용 이미지가 필요해서 잠깐 들른 걸까. 물론 터무니없는 오지랖이다.
7년 전 한 달쯤 러시아에 다녀왔다. 짐이 많지 않았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카메라가방을 내려놓고 떠났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이다. 사진기자 선배가 동행한 출장이라 가능했던 결정이지만, 괜한 호기 아닐까 싶기도 했다.
대륙횡단열차는 끝 모를 벌판을 더없이 느려터지게 달렸다. 에어컨 없는 침대칸에 웃통을 훌러덩 벗고 앉아 씻지 못한 채 2박 3일을 내리 달려 바이칼 호에 닿았다. 환호성과 찰칵찰칵 소리가 객차를 메웠다. 맨눈을 창에 바짝 들이댄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코너를 도는 찰나 얼굴을 휘어 감싸 때리던 빛의 기억이 선연하다. 후회 한 톨 없다.
15년 전 유럽여행 사진은 100장이 안 됐다. 필름값과 현상료를 고민하며 조심조심 셔터를 누른 그 시절 똑딱이 사진이 지금 내가 난사하는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사진보다 열 배쯤 낫다. 최근 모 지면 매체가 한 사진가의 전시작품을 스마트폰으로 찍어 게재한 것을 보고 생각했다. 무조건 일단 사진을 찍고 보는 습관이 무엇을 가리고 흩어버리는지.
어릴 때 아버지는 늘 내 사진을 찍으셨다. 사진 속 꼬마는 자주 울상이다. 아버지는 “남는 건 사진”이라고 하셨다. 가족사진 한 장 갖지 못한 아버지로선 당연한 말씀이었다. 하지만 꼬마의 울상을 다시 볼 때마다 떠오른다. 떨어져 나와 포즈를 잡기보다는 카메라 뒤 손을 계속 잡고 싶어서 떼를 쓰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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