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사채왕’으로 불리는 최모 씨로부터 억대의 돈을 받은 혐의가 있는 A 판사가 그의 부탁으로 B 검사에게 마약 사건 무마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이런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최 씨의 수사를 맡았던 B 검사의 소명을 최근 받았다. A 판사와 B 검사는 대학 동문에 사법연수원 동기다. 최 씨가 평소 “검사와 판사, 검찰 수사관과 경찰관 수십 명을 관리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여서 사건이 ‘법조 비리게이트’로 번지는 듯한 양상이다.
A 판사는 도박개장 및 도박 방조, 공갈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최 씨로부터 2008∼2009년 수억 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샀다. 검찰은 A 판사가 B 검사와 몇 차례 통화를 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 처음부터 최 씨가 B 검사를 염두에 두고 A 판사에게 돈을 전달한 것이 아닌지 확인하고 있다. 최 씨는 B 검사에게 추가로 마약 혐의 수사를 받고 불구속 기소됐으나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현직 판사가 범죄에 연루된 사채업자에게 억대의 금품을 받은 의혹이 제기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수사선상에 오른 피의자를 사적으로 만나는 것도 판사로서 공정성과 품위에 문제가 있다. 그런데도 법원은 A 판사의 소명만으로 “의혹은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하게 발표해 빈축을 샀다. 사건이 보도된 지 7개월이 지났는데 검찰 수사가 더딘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A 판사 계좌의 수상한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검찰 수사관 3, 4명을 피의자로 조사하고서도 B 검사의 사건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감싸는 인상을 준다. 최 씨가 판검사와 경찰 수십 명을 관리했다는 ‘어둠의 카르텔’에 대해선 수사 의지조차 없으니 특별검사라도 나서야 할 모양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이후에도 ‘해결사 검사’ ‘성추문 검사’ ‘막말 검사’ 추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마다 김 총장은 “검찰 신뢰 회복”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에는 판사와 검사가 범죄 피의자와 음성적 거래를 했다는 의혹까지 나와 사법기관의 신뢰를 깎아 먹고 있다. 검찰은 명동 사채왕이 관리하고 로비했다는 판검사가 어디까지인지 전말을 밝혀야 한다.